봄이 오기 전에 내려놓을 것들
<나는 봄날의 곰이 될래요>
다이어트라는 말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사생팬같은 말이다. 그런데 다만, 허점이 있다면 입으로만 하는 다이어트에 가깝다는 것! 적어도 결혼 전에는 마음 먹고 저녁만 굶어도 체중이 줄어들곤 했다. 그런데,
아뿔싸! 아이를 낳고 무너진 식생활과 수면패턴 그리고 다면적인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나로 하여금
먹게끔했다. 맛있게 많이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아이를 낳고 아니, 아이를 여럿 낳고 직장도 다니면서 피부도 좋고 몸매도 예쁘며 멘탈까지 튼튼한 여자! 짧게 말하면 유니콘같은 여자들이 AI가 생성한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에 살고 있었다. 그런 여자들과 동시대를 사는 나는 나만의 해법을 만들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sns를 하지 않는 것! 너무나 지혜롭지 않은가! 나에게 sns라고는 블로그 외에 글을 올리는 브런치말고는 없다. 누군가는 마음이 튼튼해서 그런 여자들을 보고도 흥, 잘났네! 부럽다! 하고 말것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와 직장 생활에 있어, 실패를 차곡차곡 듀엣으로 쌓아올린 나같은 사람에게는 부러움을 넘어선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집어삼킨다. 그렇기에 마법에 걸리기 좋은 sns를 하지 않는다.
이번 연초에는 호기롭게 6주 운동 챌린지를 결제했다. 벌써 6주의 마지막 주가 다가왔다. 처음에는 체중이 하강 곡선을 그리는 듯 했지만, 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올록볼록 그래프를 보여주는 중이다.
늘 그렇듯, 문제는 식단이었다.
남편도 방학을 하니, 그동안 혼자서는 가지 못했던 식당들을 리스트업해서 다니고 혼자라면 배달시켜서
먹기는 돈이 아까웠던 음식들을 먹었다. 아 물론 운동도 꼬박꼬박했다. 하지만 운동량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고칼로리 음식 앞에서 체중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마음을 정해야한다. 이렇게 몇 년동안 체중이 변하지 않는 나를, 봄이 오면 얇은 옷을 입으며 스트레스 받을 나를, 무거운 몸을 가진 나를 용서할 때인가? 아니면 끝까지 몰아붙여서 다른 나로 태어날 것인가? 챌린지의 마지막 지점에 서서, 나는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번 바뀐다. 대학동기가 전에 그런 말을 했다. "아이낳고 대부분 4키로는 예전 몸에 달고 살아.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 한동안은 그 말이 진리인 것처럼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주말, 키즈카페에 나보다 열살은 젊어보이고 몸에 살이라고는
한 꼬집 잡힐 것도 없는 엄마들을 보니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내가 조금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은 갈대 중에서도 상갈대에 속해서 이리저리 휘둘린다. 처음에는 나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야지. 건강해야지. 다짐했던 나를 짓밟고 너는 아무것도 못 해내면서 몇 년동안 같은 자리에 있잖아, 심지어 같은 모습으로. 속을 살살 긁으며 스스로를 못살게 군다. 이렇게 까끌한 마음이 조금 더 커지도록 한 몫한 일이 있었다. 남편의 지인분이 이번에 임용을 합격해서 장작 15년 만에 교사가 된 것이다. 아이도 낳고, 기르면서 임용을 합격한 사람이라니! 15년동안 업앤 다운을 극복하고서 자기 자리를 찾아간 사람이라니! 진심을 담아 가장 크게 축하하고 축복하면서도 내심 부러웠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몇 년간 제자리에서 변화없이 머무르는 내가.
마음은 흐르는 수도꼭지 같아서 적당한 때에 잠그지 않으면 넘쳐서 화를 부른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을 잠그기로 했다.
몸무게는 1키로 남짓 오르락 내리락, 별 변화 없이 제자리에 머무르는구만. 누군가는 멋진 엄마로 새 자리를 찾는 것 같은데 나는 아니잖아. 무거운 몸이 마음까지 누르는거 아냐? 걷지도 못하겠네. 하는 마음들...
내 마음에 진득하게 붙어있는 생각들을 잠시 거둔다.
나조차도 헛웃음이 나는 지점은 이런 못난 생각들을 하면서도 정작 강박에 걸린 여자처럼 행하는 일들이다. 새벽에 일어나 라이브 운동을 하고 요거트에 채소랑 과일을 넣고 건강한 아침을 먹는 그런 일. 다시 용기를 내서, 솔직함을 한 스푼 크게 때려넣고 뭉개진 마음을 휘휘 젓는다. 사실 나는 습관을 다 바꾸지 못하는 것보다 그저 체중이 무거운 나 자체를 용서하기 어렵다. 그냥 장롱속에 처박아 놓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기도 한다. 정신이 약해빠진 나를, 목표달성이라곤 없는 나를, 도저히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엄마가 곧 올라오신다. 내가 출산 이후로 입지 못하고 놓아둔 청바지는 평생을 마른 편에 가까운 엄마에게 예쁘게 맞을 것이다. 잘 접어두었다가 엄마에게 드려야지. 이 바지를 포기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좋아하는 옷이기도 했고 언젠가는 입겠지라는 얄궂은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작아진 물건을 쇼핑백에 담을 시간이다. 봄이 오기 전에 하는 화해의 시작. 이것으로 정한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운명에 맡긴다.(다이어트 운명론 등장이라니!)
봄은 나를 어련히 알아서 따뜻하고 밝은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게다가 그 곳에는 체중계도 작은 바지도 비교대상이 되는 어느 누군가도 없다. 단지, 다이어트라는 줄로 꽁꽁 묶여있는 내가 그 줄이 다 풀린 채로 가볍고 유쾌한 발걸음으로 기다릴 뿐. 그러니, 나는 봄을 위해 숨을 고른다. 다이어트 운명론을 믿으며.
안내서가 되어줄 가벼운 발걸음을 의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