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레시피(2)

늦지 않게 받아 적어야 하는 사랑

by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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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4년이 지났다. 엄마는 떡볶이를 팔아선 자식들 대학이나 보내겠냐며, 맛집을 수소문해서 다녔다. 계절을 그나마 좀 덜 타고 사람들이 한 번 먹으면 이윤이 많이 남을 음식을 찾으러 다녔다. 그렇게 몇 달을 가게일을 하면서도 주말을 쪼개서 엄마는 다녔다. 엄마가 공부를 더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몽롱한 정신으로 엄마 뒷바라지를 받는 나 대신에 엄마가 차라리 공부를 했으면 뭐라도 됐을텐데..하고 마음으로 곱씹었다. 그렇게 분식집이 잘 되어가다가 배달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엄마는 칼을 뽑아들었다. 가게 주인에게 가게를 내놓겠다고 연락하고 아파트 길 건너 윗단지에 먹자 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가게를 새로 내는 것은 옆에서 지켜보면 너무 빠르고 쉬운데, 가게를 없애는 일은 공이 많이 들었다. 돈만 있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집기를 정리해서 팔고, 가게 주인의 푸념을 들어줘야했으며, 무엇보다도 가게에 남은 정을 털어야했다. 자식들을 기르는데 미래분식이 있어서 고마웠다고 엄마는 가게를 정리하는 일주일 내내 혼잣말을 했다. 단골 손님들은 아쉬워했지만 다시 길 건너에 식당을 연다고 하니 더 크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하면서 같이 기뻐해줬다. 그렇게 엄마는 '군산 아구찜'을 열었다. 엄마가 가게를 열기 전까지 나는 아구찜을 먹어본 일이 없었다. 물컹한 식감에 매운 양념을 무슨 맛으로 먹는가 싶었는데 가게는 오픈 빨을 넘어서서 장사가 잘됐다. 술손님이 많았다. 분식집과는 아예 다른 분위기였다. 그때 알았다. 음식점은 음식보다도 술에서 이윤을 남긴다는 걸. 그리고 이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가끔은 냄새나는 술주정도 받아줘야한다는 걸.


엄마는 가게를 더 늦게 닫고 아침에는 전보다 천천히 나갔다. 헬스장에 들러서 운동하는 일도 빠트리지 않았다. 전날 손님이 많아서 늦게 퇴근한 날도 거르지 않았다. 빠짐없이 우리의 아침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대강 마무리하고 운동을 갔다. 아침에 들어서는 아파트 지하 헬스장은 습하고 냄새가 났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깔끔하고 쾌적한 헬스장이 널렸는데도 엄마는 시간도 돈도 아깝다면서 아파트 지하로 향했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고서야 알았다. 아파트 지하에는 장사를 나가기 전에 자신을 다독이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손님이 오늘 좋을지 나쁠지, 가게 매출이 높을지 낮을지 알 수 없는 하루의 시작에 자신을 달래러 나가는 것이었다.

오늘 하루도 제발 새끼들을 위해서 잘 버티자고. 조금 더러운 소리를 듣고, 짜증나는 순간이 있어도, 손님은 손님이니 경찰을 부르는 일만 없으면 된다고.


엄마의 일은 5년이나 이어졌다. 경찰이 가끔 와서 술주정뱅이들을 데려가기도 했고, 집근처 헬스장 삼촌을 불러다가 싸움을 말려달라고 한 일도 종종 있었다. 엄마는 그냥 성실할 뿐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서비스를 주려고 노력하고 손님 앞에서 감정을 숨겼다. 그런데도 손님들을 장사를 하면 할 수록 모질게 굴었다.

가까워졌다는 자신만의 이유로 무리한 요구를 했고, 어느 날엔 음식에 침을 뱉고 나가기도 했다. 진절머리가 났다. 장사를 이제 그만 하면 안 되는 걸까? 취업을 하지 못하고 이력서가 계속 떨어지는 주제에 나는 속없이도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를 구렁텅이에서 꺼내줄 노력은 제대로 못 하면서, 엄마가 구렁텅이에서 코만 내놓고 간신히 숨 쉬면서 우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바보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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