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지 않게 받아 적어야 하는 사랑
(3)
대학을 졸업하고도 알바 자리만 전전하던 때에, 엄마가 폭탄선언을 했다. 가게를 정리하겠다고. 그리고 제주도에 내려가겠다고. 다 지겹다고 했다. 독하다 싶게 루틴을 고집하던 엄마는 목표물을 잊은 활처럼 내려 앉았다. 설마 제주도에 가서 장사를 하려고 하는건가? 싶어서 슬쩍 떠봤지만, 엄마는 완강히 아니라고 답했다.
나도 이제는 쉴 때가 된 것 같다고. 너희도 앞으로는 알아서 살 때가 됐다고. 매정하게 들렸다. 우리 모두는 엄마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나 생각을 들여다보는 다정함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아파트에 들어가는 세금, 공과금, 먹는 물 한 잔까지 모두 엄마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염치가 없다는 걸 그때서야 생각해 본 것이다. 그냥 당연하게 때되면 떨어지는 사과를 받아먹는 심정으로 나는, 게으른 곰처럼 엄마라는 나무 아래서 누워있기만 했으니까. 오히려 동생들이 더 의연했다. 둘째는 이제 막 입사를 한 터였고, 막내는 군대를 입대할 예정이라 엄마의 독립이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 이 집에서 제일 문제는 나였는지 모른다. 제일 책임감있는 척 하며 엄마 옆에 서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애로 남아있었던 나. 입사를 하는 여동생은 회사에서 주는 방에서 살기로 했고, 막내는 나라에서 주는 방에서 살게 됐으니 엄마는 너만 해결되면 되겠다고 통보했다.
집에 낯선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했다. 장사를 정리하러 나간 엄마를 대신해서 내가 집을 치우고 손님을 맞이했다. 들어오면서 새로 도배를 하고 강화 마루를 깐 집이었다. 오래도록 살겠다고 방이 4개이고 욕실이 2개인 집을 산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빠는 별 말이 없었다. 적극적으로 나선 때는 아마 결혼을 하기 위한 시절만이 유일한 듯이 조용히 묵묵히 그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집이 팔리는 데는 한 달이 걸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는지 세어보지 못했지만, 집이 팔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청소를 해야하는지 저절로 알게되는 한 달이었다. 엄마는 당근거래를 알려달라고 했다.
큰 가구들은 팔아버리고,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떠난다고 했다. 아빠를 두고. 헐.
아빠는 시골집에 내려간다고 했다. 엄마짐, 아빠짐 그렇게 두 짐이 추려졌고, 나는 원룸에서 투룸으로 이사한다는 친구네 집으로 이사가기로 했다.
한 가족이 모여서 살기까지 아니, 한 가족을 꾸리기까지 오랜 시간과 공이 든다. 두 남녀가 만나야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렇게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런데 각자 뿔뿔이 흩어지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만들기는 어려웠는데 한 번 잘못 건드리면 부서지는 레고처럼,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