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 둘
신록이 우거져 짙어지는 여름, 눈에는 늘 담을 수 있는데 생각보다 풀향이 짙게 나는 때는 정해져있다. 바로 우기다.
우리 나라의 특성상 여름에 점점 폭우로 변해가는데 그러면 오히려 풀향이 다 날아가서 느낄 수가 없어 아쉽다.
내가 풀향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숲향을 느낀 것은 제주에서 살았던 기간 동안이다. 제주도 왜 내려갔느냐하면을 설명하라면 여러모로 복잡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1. 직장이 생겨서 2. 엄마와 함께 사느라 제주에 내려갔다. 보통 사람들에게 제주는 힐링 여행지이고 누군가는 친정이라고 하며 한 달 살이를 가보려고 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에게 제주는 다시 경기도로 돌아올 때까지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제주에서 사는 것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일자리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숲이었다.
제주에서 살면서 주말이 되면 버스를 타고 나갔다. 어떤 날에는 서쪽 끝 지점의 우리집에서 동쪽 끝까지 가느라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야할 때도 있었지만, 비가 내려 숲이 촉촉하게 젖은 날에는 꼭 밖으로 나갔다. 사려니 숲, 절물 휴양지, 한림 수목원, 제주곶자왈...쓰자면 너무 많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사려니 숲.
사려니 숲은 날이 개어서 맑을 때도 그 빛이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비가 와서 촉촉하게 젖는 날에 진가를 발휘한다. 물론 온전히 나의 기준이다. 하하. 우비를 입고 숲에 들어가면 은은한 풀향이 먼저 반긴다. 떼로 우거진 풀이 길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고 그 위로는 적당히 휘어진 나뭇가지가 물방울을 품고 상쾌한 향을 내뿜는다.
그 친구들이 향을 내뱉어주면 나는 숨을 고르고 깊이 마시면서 그야말로 문자 자체의 의미 "힐링"을 한다. 특히 나에게 제주에서의 첫 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한 주 뒤에 출근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일주일 입원을 했고 그 후유증인지 1년 가까이 몸이 아팠다. 벌써 10년 정도 되었으니 나도 젊다고하면 어디서 빠지지 않을 젊음이었는데도 지독하게 아팠다. 그래서 너무 스스로 쳐지는 것 같아 숲을 다니기 시작했다. 뚜벅이로 말이다. 그게 바로 나의 숲사랑의 첫 걸음이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지났지만 나의 일상은 결국 제주에서 뿌리내리지 못했다. 우습게도 제주까지 소개팅하러 내려온 남편을 만나 꿈에도 그리던 경기도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문세의 노래 제목처럼 '알 수 없는 인생'이 아니던가. 남편과 연애하며 주로 수목원이나 휴양림을 다녔다.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하고 서로 쉬이 속내를 터놓았다. 숲이 주는 평온함과 안락함에 우리 둘 사이도 만난 기간에 비해 금세 안정감을 찾았다. 뭐에 씌였는지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아이도 낳았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지금도 생각하건대, 숲과 같은 자연이 아니라 그저 아스팔트 길에 콘크리트 빌딩이 무성한 이 도시에서 남편을 만났다면 나는 그와 결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본래 빡빡한 마음을 가진 나에게 남편을 들여놓을 자리는 회색 도심의 답답함만큼 좁디 좁았을테니 말이다. 숲이 주는 '괜찮아'라는 무언의 향기과 분위기가 우리 장거리 연애의 봄,여름,가을,겨울을 견디게 해 주었다.
알람이 오자마자 아 오늘은 풀향에 대해서 써야지하면서 그 다음 떠올렸던 것은 사실 숲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 쓰는 '궁중비책'이라는 아기 로션이었다. 인공향이긴 하지만 과하지 않은 싱그럽고 푸르른 냄새가 나는 이 로션을 아기에게 발라줄 때마다 늘 기분이 좋다. 향에 민간함 나는 주로 무향을 쓰는데도 어느 날에는 손을 씻고 나와서 한 번 발라볼 만큼 이 냄새가 편하고 친근하다.
풀과 나무가 만들어낸 냄새는 내 인생의 한 경로를 바꾸었고 나를 옮겨줬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로 그 기억을 찾게도 한다. 여름이 아직 다 가지 않아서 덥긴 하지만, 지친 심신을 가지고 있어 한 번 기운을 내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숲에 가서 풀향을 맡아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풀향은 당신의 폐까지 다시 싱그럽게 만들어 줄 진짜 좋은 냄새이기 때문에. 짧은 한 순간 정도는 당신도 나무가 될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