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만은 내게로

나의 여름 하나

by 여름

여름의 시작은 6월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름이 시작될 말미에 내 생일이 있다. 그리고 한 주 뒤에는 남편의 생일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름에 늘 한 살씩 더 먹게 된다. 아직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 왔는데, 착각은 자유였다.

아이 어린이집에 '메타뉴모'라는 바이러스가 돌더니 아이가 일주일을 꼬박 앓고, 몇몇은 폐렴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무렵 나도 걸렸다. 애 있는 집이야 다 그렇지~ 어린이집에 다니면 어쩔 수 없지~라는 그 감기는 내 생각보다 복잡하고 혹독했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3주 꼬박 항생제를 먹고 나니, 말 그대로 살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도 이번만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몇 번을 반복하더니 마지막 즈음엔 머쓱한 채로

"그냥 조바심 갖지 말고 계세요. 낫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려요." 하셨다.

그렇게 6월 말부터 시작된 감기가 나으니 7월이 날아갔다. 여름이 오긴 왔는데 시름시름 앓느라 많이도 가버린 것이다.


올 해 처음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초보 학부모인 나는 따로 공식 방학 일정이 없는 어린이집에 휴가 희망 날짜를 적어내었다. 24개월을 꽉 채우고 보냈는데도 어린 아이가 기관에 다니면서 힘든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남편과 상의 끝에 (화)~(일)이라는 일주일에 가까운 방학을 적어내었다.

나는 너무 무지했고 호기로웠다. 방학이라함은 삼시 세끼를 내가 다 챙겨야 하고 더불어 방학인 남편도 함께 챙겨야한다는 뜻이었는데, 왜 나도 그간의 짐을 덜고 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방학은 나에게 해당되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엄마가 된 지 이제 막 3년 차, 나같은 무지랭이는 알 리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를 생각해 고양 현대 모터스 스튜디오를 가고, 추피책에 나오는 회전목마를 갈망하는 그를 위해 롯데월드에 갔다. 그리고 문화생활이라고는 하지 않는 내가 <빠씨를 찾아서> 전시가 있는 소마 미술관에 갔다. 하루 외출하면 다음 날은 쉬어야하는 나같은 인간에게 연달아 3일 외출은, 그것도 30개월에 '싫어'만 외치며 몸부림치는 아이와의 외출은 고난이었다. 3일이 지나고, 나는 두손 두발을 들었다. 항복이야. 너희 둘이 해결해. 하고 말이다. 남편과 아이는 남편 지인과 그 집 아이를 만나 키즈 카페에 갔다. 평일이 다 지나고 남은 토-일의 여정 중에 남편이 하루는 연수를 갔고 하루는 친정 아빠와 식사를 했다. 그렇게 내가 방학이 뭐 별건가 하고 가소롭게 생각했던, 하지만 실제로 어마무시하게 힘들었던 방학이 끝났다.


아이의 방학을 보내며 7월이 가버렸고 8월이 덧붙어서 돌아왔다. 그동안 미루었던 운동을 재결제해서 오늘 아침부터 시작했고 도통 머리를 굴리지 않는 나를 위해 글쓰기 모임에 뛰어 들었다. 작년 가을 이후로 끊어버린 영어 공부만 되찾아 온다면 그토록 내가 바라던 나만의 루틴 (운동-글쓰기-영어)이 회복되는 순간이 곧 온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남편과 아이를 주눅 들게 하고, 내가 무수리도 아닌데를 수십번씩 외치며 어설픈 솜씨로 두 황씨를 돌보는 일에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아이와 남편을 내보낸 오늘, 오롯이 앉아 생각해 보았다.

내 몸이 아프느라, 그렇게 아픈데도 가족을 챙기느라 나의 모든 루틴이 깨어졌기 때문에 화가 났다는 것. 누군가를 챙기는 게 단순히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하는 상태로 누군가는 기계적으로 돌보아야만 하는 현실에 여름 내내 화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원이라는 임무가 오기 전에 재고 따질 시간조차 아까워 주제를 받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까르보불닭에 소시지까지 먹어 도파민을 풀 충전한 후에 나의 여름에 대해 써 보았다.

8월의 대부분 시간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일부분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적절히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글을 쓰며 헝클어진 머리 속과 뭉그러진 마음을 재정비한다. 놀랍게도 글을 쓰니 마음이 정돈된다. 그리고 묘하게 평안하다. 남편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는 내가 나를 잘 지켜낼 수록 적어진다는 것을 여름 감기로 몸살을 앓아가며 배웠으니, 나를 지키는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면 되겠구나 깨닫는다.

여름 이후, 처음으로 평안을 찾은 기념으로다가 8월에게 큰 소리로 말해야겠다.

"잔말 말고 8월은 내게로 와라. 지난 두 달 고생했던 내게로 제발 돌아오너라. 좋은 말로 할 때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한 인간이 인류애를 지속하는 데에 일조하렴."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