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11부터 15까지

by 여름

11.

몸무게만큼 마음도 무거우면 좋으련만


잘 설득하는 만큼 언행일치도 되면 멋지련만


마음은 깃털처럼 변덕스럽게 가볍고


행동은 대낮 술주정뱅이 같이 괴팍스럽다.


나를 다스리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란 걸 진짜로 난 몰랐다.


내가 누워있는 방이 좁은게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좁은게 더 문제라는 것.


12.

두 자매는 엄마가 사 준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습니다.

몇 년전부터 말이죠.

눈에 보일까 말까 하게 빛나는 언니의 십자가와

반짝이며 큐빅 띠를 두른 동생의 십자가는

변함없이 그들의 목을 두르고 있습니다.

그 때는 몰랐던 것 같아요.

예쁘게 보일 목 위의 십자가만 있는게 아니라

무겁게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도 있다는 것을요.

언제쯤 알게 될까요?

실은 그 두 사람 등뒤에 짊어진 십자가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죠.


13.

그 사진을 보면서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옷의 질감이 어떠하였는지 내가 얼마나 아꼈는지 당시에 옷에 머물렀던 섬유유연제 냄새까지도 기억이 난다. 단 이 기억의 특징은 사실을 암기하여 연필로 슥삭이며 쓸 수 있는 종류의 것이아니다. 그 당시의 냄새 분위기 촉각 등이 내 상상과 적절히 버무려져 흐릿한 붓터치로 기억되어 있다.


14.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버스를 타던 남고생이 있었다. 그 애는 유난히 얼굴이 하얗고 준수한 외모를 가진 애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교복셔츠 소매를 보고 그 아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남고생들의 교복은 대부분 지자분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 애의 손목은 2년이란 시간만큼 헤져 있었지만 놀랍도록 새하앴다. 또 언제나 잘 다려져 보는 사람마저 안정감이 들어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막내의 교복셔츠 안 쪽에는 체크무늬 천이 덧대어져 있어 때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녀석은 손빨래를 해달라 한다. 내가 막내의 나이었을 때 눈길이 간 곳은 셔츠의 소매였다. 그리 주시할만한 곳이 아닌...인생에 큰 것이 있을 것처럼 살아간다. 모든 거품을 지우고 보면 인생은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셔츠의 때를 빼면서 작은일을 관심 가지고 애써야겠다는 생각에 젖은 손으로 뛰어 나와 아이팟을 두드린다. 시간이 지나 옷감이 닳는 것처럼 내 모습이 낡아져도 기분 좋아지게 안정감 주는 작은 구석이 내 인생 가운데 있었으면 좋겠다.

무덤에 들어가기 전 어느 한 순간이라도.


15.

모두가 모든 문제들 속에서 확인받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을까?"

한 마디면 된다.

"응."

수식어도 설명도 필요없이 그냥 가벼운 고개를 까닥이며 이 한 마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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