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81부터 85까지

by 여름

81.

- 우리는 왜 그렇게 의미를 좋아할까요?



# 무슨 사이였다가

아무 사이도 아닌게 되니까 아픈거죠

어떤 사람이었다가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니까 슬픈거죠


- 그냥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뿐인데 말이죠?


# 사람들에게는 그 처음이 제일 어렵고

애석하게도 기억마저 오래 남거든요


82.

ㅡ 장마


나는 니 얼굴을 보기도 했다가 닫기도 했다가


피하기도 했다가 어루만지기도 했다가


했다가 하다가


그것이 지금이 아니라는 걸 알곤


조금 운다.




다 마를 때까지도


니가 오지 않은 거라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운다.


더 구질스러운 냄새로 운다.


눈물은 안 나는데 마음만 축축해


젖은 운동화보다도


더 꿉꿉스럽게 운다.


83.

세상의 모든 책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다른 색깔의 표지를 입고


어순이 뒤바뀐 말을 쓰고


결말 또한 다른데도


모든 이야기는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살게한다.


다른 방식의 표현을 하고


순서가 뒤바뀐 고백을 뱉고


체취 또한 다른데도


모든 사랑들은 사람을 빚어낸다.


84.

나는 엄마 손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엄마 자리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인간으로 죽어간다.



나는 니 관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인간으로 살다가


니 자리가 비어도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무서운 일이다.


엄마와 니가 없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큰 구멍을 메우고 어른이 된다는 건


85.

십년이 지났다는 건


방금 깎은 연필의 뾰족한 끝이


받아쓰기 십번까지 쓰고 난 만큼


아주 세밀하게 뭉툭해지는 것

작가의 이전글생각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