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11 일기
나는 여름 태생이고 남편도 여름 태생이다. 그리고 아기를 여름에 가졌다.
누가 뭐라해도 나에게 여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계절
에어컨을 틀고 집에 아기와 주로 '박혀있는' 생활이지만 가끔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몇몇 장면들이 요며칠 생각났다.
엄마가 아구찜 가게를 하실 때,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온전히 모여서 살았을 때
아마도 대학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나 바쁜 엄마가 가게를 하루 쉬고
여동생도 방학을 해서 우리는 원목 식탁에 앉아서 프렌치 토스트를 산처럼 쌓아놓고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자체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 평화롭다라는 느꼈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릴 때의 여름은 주로 해수욕장이나 속초로 휴가를 가던 차 안, 휴게소, 우리 식구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과 함께 가서 재밌기도 했고 또 아이들을 대동한 여행인만큼 다른 집 아이들과 다투어 혼났던 기억, 찝찝한 바닷물을 씻어내느라 바빴던 샤워장의 기억..그런 것들이 혼재한다.
더 어릴 적에 단독주택에 살았던 때는 엄마가 여름이면 날이 너무 더우니까 집앞 마당과 주차장 쪽 그러니까 콘크리트를 다 부어서 만들어서 그 뜨겁게 달궈진 곳을 호스를 풀어 물을 흥건히 뿌려두면 시멘트 냄새같은 것이 싹 올라오면서 물기를 머금다가 금세 말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수박를 동그랗게 숟갈로 떠서 거기에 과일 통조림과 사이다를 부어서 만들어주셨던 화채, 얼음을 다 갈아서 팥에 떡에 싸구려 젤리를 넣어서 우유 듬뿍 부어 먹던 팥빙수, 오이를 채 썰어서 투명한 국물에 얼음까지 띄워 만들던 오이냉국이나 입맛없을 때 비벼먹는 오이지 무침을 넣은 비빔밥, 그 더운데도 콩국물을 만들어서 해 주시던 뽀얀 콩국수...여름 별미들도 생각난다.
세세하게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어떤 장면, 일말의 느낌들이 남아서 잠들기 직전 혹은 고요해서 지금과 같이 혼자 있는 시간에 과거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어떤 날엔 좋고 어떤 날엔 서글프다. 그리고 계절마다 한 두컷 정도 기억에 남았을 나의 시절들을 생각하면서 이젠 나와 남편이 아이의 그런 장면을 만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사실 기대나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크다. 이렇게 나만해도 어른이 되어서까지 기억나는 장면들을 아이의 삶 속에서 내가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어떠한 주관적 느낌으로 기억된다는 것이 좀 무거운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쩌겠나. 여름은 매 년 오고 내가 살아갈 여름 동안 나머지를 되도록 좋은 기억으로 채우는 수밖에... 그리고 아들의 기억 속에서도 우리가 즐거운 가족으로 행복했던 시절에 살았었구나 하고 남겨지기를 소망하며 살아가야겠지.
원망과 후회같은 것 성정상 다 지우고 살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것이 앞으로의 삶을 끌어가는 데에 장애물이 된다면 현재를 바쁘게 일부러라도 살면서 좀 무겁고 끈적한 나의 옛 이야기들은 앞으로의 토양에 썩어 없어지도록 퇴비로 뿌려두어야겠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영양분이 되어서 앞으로 가는 길에 작은 씨앗 하나라도 싹을 피워 자랄 수 있겠지.
글을 잘 읽지도 쓰지도 않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머리를 굴리며 무언가를 쓰려고 하니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쓰고 나니 나의 여름은 멋진 기억이 더 많다. 덥고 끈끈한 계절 속에서 시원하게 뿌려지던 물줄기처럼 내 생의 다른 여름들에게도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