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24.03.19 일기

by 여름

마흔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마흔이 되면 훅 간다고 농담스레 말할 때는 그것이 농담인줄만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30대였기 때문이었지요.

마흔이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나라에서 나이를 줄여줬다고 해도) 생물학적인 나의 몸은 진실하게도 반응했습니다. 따뜻한 제주도를 상상하고 떠났지만 기온만 높을 뿐 줄창 비가 오고 바람도 얄미운 그곳에서도 딱히 기분 좋은 휴양을 보내고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흔 둘과 한 살 아기, 우리는 꽉 짜여진 한 팀인데 그 한 팀인 것이 버겁고 서러운 두 주를 보냈습니다. 같이 아프고 혼자만 뒷바라지하는 것 같은 '엄마' 1년차의 울그락 불그락한 마음은 이내 진정되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은 들뜬 마음과 내가 이렇게 무수리로 살 수는 없다는 어떤 결연한 의지가 가방 쇼핑으로 저를 이끌었고 저는 그렇게 곗돈을 썼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영어 공부 구독도 1년을 했지요.

부끄럽게도 영문과를 졸업하고도 회화가 어렵고 외국인이 무서운 사람이 저인지라 다시 또 하는 척하면서 다시 또 해야하기에 그렇게 곗돈을 낭비해야했습니다.

올 해 유난히 병원을 많이 갔어요. 정형외과, 치과, 내과, 가정의학과, 안과

집 주변에 둘러싸인 그 흔한 간판의 병원을 가서 내가 제일 많이 매출을 올려줄 줄은 몰랐기에 나의 잔고는 울고 나 또한 집에 와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도망가고 싶었다는 것이 진심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정말로? 라고 되묻고 싶을 정도로 나의 체력은 바닥이고 인내심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내가 가장 소중해서 뭐 하나 내 줄 줄을 모르던 그 본성이 스물스물 기어나와서 대기를 타고 있었다가 몇 번은 터져서 기어이 화를 내고 애를 울리고 남편을 곤욕스럽게 하는 날들을 모으고 모으니 벌써 춘삼월의 절반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실없는 농담과 자조섞인 이야기를 하고 나의 언어 생활이 강아지 멍멍, 소는 음메로 반복되는 단조롭고도 의성어로만 가득차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을 하고 일을 하는 친구를 피곤의 모퉁이에 몰고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마흔즈음이면 뭐라도 하나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몸도 마음도 그리고 정신력마저도 너덜거려서 무엇 하나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간신히 연명하는 나의 깃털같은 가정생활 속에서 엄마가 발품을 팔며 배송이 안 되는 야채며 과일, 생필품을 사서 나르고 아웃렛 창고에서 나온 옷들을 무더기로 사오던 날들을 생각하니 아무리 젊었다 한들 그 시절의 엄마의 고됨은 나에게 비할 바가 못 되는구나 느끼며 이제야 약간 철이 들까말까 하고 있네요.

아기를 낳고 기르며 집에만 박혀있어서 봄이 왔는지도 몰랐던 작년에서는 벗어났으니 올 해는 꽃도 보며 유모차라도 끌 수 있어서 대박적 봄이라고 마음으로 되뇌어 봅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멋짐은 없는 단어일 수 있으나 잔잔바리 즐겁고 힘들고 화내며 반성하는 날들의 굴레 속에서 병원을 다니면서도까지도 용케 나는 살아있구나하고 그냥 토닥이며 보통의 도장이라도 찍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의 무엇, 가장 어렵고도 소중한 그 무엇을 말입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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