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181부터 185까지

by 여름

181

글과 음악이 없었다면

문학소년, 소녀가 아니더라도

낭만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그냥 평범한 우리도 힘들게 살았겠지


후덥지근한 바람이 부는 집안 공기를

채우는 빛 바랬다고 생각한 노래들

한 가수의 덜어내지 못하여

넘치던 목소리들이

시간을 타고 넘어

잘하려는 욕심과 열정을 탁탁 털고

가벼이 귀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낮


지금 나는 나태하지만,

그렇기에 저 멜로디를

마음에 담을 수 있구나


대단한 감성을 가지지 않아도

흐르는 음악에 고개만 끄덕일 수 있으면

그러면 좋겠다. 내가 사는 이 시간동안


비긴 어게인 3 이런 음악프로를 처음 보면서



182

인생이 굴곡지다는 걸

아는데도


그 굴곡의 각도가 얼마인지

경사가 얼마나 가파른지


시시때때로

그 오르내림을 견디는 사람의 체력과

그 사람 주변을 사는 타인들의 부침이

달라지기에


인생은 어떠하다라는 말은

참으로 간단하게 서술어를 바꾸면서도

과히 어떤 부사를 쓰지 못하도록

근엄하고 무겁다.


끝날 줄 알았던 매듭에서

다시 꼬리를 지어 더 긴 줄을 만들며

나아갈 때


매듭을 짧게 지어 거친 이도

매듭없이 손에 쥐기에 보드라운 이도

제 자리에서는 버겁고 두렵기 마련이니


내 입으로 떠드는 당신의 삶이

적당히 가볍되

무사히 닿도록

응원하고 싶다.


성은이와 통화한 밤


183

퇴근길에 울리는 라디오가

다른 나라에서 새벽을 맞는 당신을 깨워

같은 사연을 듣고 있다면


치킨이 배달올 때

다리만 붙드는 나와

퍽퍽한 살만 먹는 당신이 싸우지 않고

입안 가득 즐겁다면


미묘한 기류가 흘러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남들은 몰라도 당신만이 알아차려 준다면


한다면 된다면 각각의 가정으로 끝나는

조각들이 맞아들어가

그것이 사랑인 줄

그 때가 전부인 줄

허우적대며 살았는데


여름이 애틋하게 노을을 사랑하는

붉은 마음을 보니

수 많은 가정법이 우리를 붙들었던게 아니라

허무할만큼 서툴지만

딱히 잃을 것도 없어서

그저 서로를 사랑했음을


가을이 자리를 잡으려

여름을 보내는 이 저녁에야

잠잠히 되돌려본다.

싱그러워서 이제는 꺼내보기도 아까운 그 사랑을


184

무거운 내가

덜 무거운 당신을 만나


뛸 수 있는 일이 나에겐

유일한 일인데,


당신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뛰지 말라고 하면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가서 닿아야 할까요


말하지 못 한 다락방이

아직은 정리가 덜 돼서


당신만은 모른 척

문을 들여다보지 않았으면 했는데


벌컥 열린 그 틈새로

괜찮다는 얼굴을 하는 당신을

나는 보내야만 하는 걸까요


돌고돌아 만나도 좋으니

너무 억지스럽게 서로를 찾지는 말고


우리라면 달빛이 주는 위로를 따라

햇살이 비치는 소중한 사진을 더듬어

다시 제자리에서 만나요.

우리가 시작한 그 노래가 흐르는 그 곳에서 말이죠.

* 유열의 음악앨범을 본 8월 31일 :)


185

연인 사이든

친구 사이든

가족 중에든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어려워진다.


한 쪽은 느끼지 못하는

어색하고 텁텁한 공기가

대체로 가볍고 가끔은 먹구름이 와도

하룻밤이면 털어내던 지점을

집어삼킬 때


다른 한 쪽은

그 튼튼한 끈을 한올한올 풀어서

그 사람과 헤어질 준비를


아주 천천히 조용히

마지막은 서늘하도록 준비한다.


비수를 꽂으려고 마지막까지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와 나 사이의

그럭저럭 괜찮던 호흡이 희미해질 때

한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여기까지 왔기에


눈치채지 못했다고 변명하며

눈물까지 쏟아내는 사람에게

나도 좀 한 호흡으로 살고 싶다고

처절하게 외칠 뿐인 걸


그는 알까

나는 알았나

누가 그럼 알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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