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부터 200까지
196
내가 말하는 것이
피할 수 없었던 '사정'이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핑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살아야만 한다.
197
그럼에도
어쩌겠나
봄은 왔고
바람은 살랑이는데
굳은 마음으로
딱딱하게 굴어봤자
나만 손해인 걸
하늘이 해사하게 웃고
바람이 볼을 스치는 날엔
꿈에 나올 만큼 미운 사람과
부르르 떨게 원망스러운 장면도
봄날 이불 탁탁 털어 말리 듯이
몇 번 마음을 두드려서
멀리멀리 보내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숨쉴 봄도
나비처럼 가벼이 날아서
여름이 올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으니까
198
슬펐던 마음이
사라지거나 옅어져 의연하다고
어른이 됐나보다고 생각했다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것엔
아무렇지도 않다가
무심코 길가에 덩그라니 한 그루 남은
동백꽃이 때를 다 잃어
툭 떨어진 것을 보니
아 내 마음이
정말로 툭 하는 소리를 내고
떨어지던 시간과 계절이 있었지
야트막한 바람과
얼굴을 가볍게 스치는 습도의 바람이
따라붙어서 달려 나왔다.
똑도 아니고 톡도 아니라
그저 툭 하고
둔탁하고 매정하게 떠나던 마음이
어쩐지 생각나서는
다시는 그런 슬픈 마음은
맞이하고 싶지 않아
라고 조용히 마음으로 읊조렸다.
그러니 주말이 갔다.
주말이라 다행이었던
슬픔이었다.
199
모든 터닝 포인트는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해 볼까? 에서 시작 된다는 것
200
실력에 대해서
칭찬을 듣거나
내 스스로도 이 정도는 괜찮아 라는
생각이 들 때
겸손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상태 정도의 좋음이
궁극적인 좋음인가를
진지하게 가늠하게 돼서
아직은 아니에요 라고 답하거나
아직은 아니야 라고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열에 아홉은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나는 너무 모자라서 부끄러워
이렇게 스스로를 두들겨 패는 지경은 아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마음이
책을 읽게 하고
뭐라도 쓰게 하며
혹시 좀 더 좋은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고민의 방을 열어둔다.
문학에 좀 빠져야한다면서
많은 노래를 좋아해야한다면서
아침엔 신문을 봐야 한다면서
방법을 알려주고 떠난 사람이
나를 걱정하던 것과 달리
그걸 굳이 정답으로 믿지 않고도
타인에게 내 수준을 의심받지 않으며
운이 좋게도
느린 속도로 걸을 수 있었다.
경차 엔진을 가진 내가
세단의 부드러운 강함을 노릴 순 없겠지만
불현듯 터지는 단어와 구절들이
송글송글 맺혀서
포도송이같은 내 인생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