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살다] 어쩌다 이런 시기에...
작전명 : 존버
어제가 만우절이었다. 뉴스에는 온갖 가짜 뉴스 같은 진짜 뉴스들이 온통 도배되다시피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뉴욕에 살고 있는 나는 매일 아침 이게 다 거짓말이 아닐까? 그동안 봐왔던 영화, 드라마, 읽어왔던 소설 모든 상상의 한계보다 오늘이 가장 최신의 날인데 말 그대로 과학이 가장 발달해 있는 오늘... 전 세계가 바이러스 때문에 이렇게 힘든 게 정말 사실일까? 싶은 하루하루다. 그렇게 눈을 뜨고 사워를 하며 정신을 차리고는 운전을 해서 회사에 간다.
뉴욕이 맞나 싶을 만큼 도로에는 차가 없어서 집에서 JFK 공항까지 이렇게 가까웠었나 싶을 만큼 금방 도착한다. 요즘의 JFK 공항은 마치 예전에 잠시 스쳐 지나가 봤던 어느 한적한 도시... 혹은 시골 공항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내가 일하는 JFK TERMINAL 1은 고요하다 못해 삭막할 지경으로 바뀌었다. 하루에 40-50편의 항공기가 아시아에서 유럽에서 또 남미에서 쉬지 않고 드나들어서 저녁 시간 러시아워에는 게이트가 없어서 도착한 비행기가 한참을 유도로에서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이곳에 오늘 들어온 비행기는 단 두 대였다. 공항에서 조업에 사용하는 많은 차량들 그리고 장비는 그저 언제 다시 사용할지도 모르는 채로 공항 곳곳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뉴욕의 3월은 주로 흐리고 가끔 파랗다. 말 그대로 비타민 D가 필요한 우울한 계절이다. 지난겨울에는 평년보다 많이 따뜻했던지라 눈이 두 번 정도밖에 내리지 않았고, 그나마 내린 눈도 잠시 내리다 그쳐서 쌓였다고는 할 수 없이 그냥 내리다 녹아버렸다. 그런 겨울이 지나고 아직 완연한 봄이 오기 전인데 예민 대마왕인 내 입장으로서는 언제쯤 마스크를 벗고 멀쩡히 봄 공기를 자유롭게 맡을 수 있을지... 밖으로 나갈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대인기피증이 생길 지경이다.
출근을 하고는 하루에 비행기 한 대를 띄우고 집에 돌아간다. 집에 가서는 주로 뉴스를 본다. 한국 뉴스, 미국 뉴스, 신문기사... 보면 볼수록 머리가 지끈 거린다. 그렇다고 안 볼 수는 없는 게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며칠 사이에도 생겼다 없어졌다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나아지는 소식은 하나도 없고, 점점 한계에 다가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러다가 정말 더 큰일 나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지난주만 해도 뉴욕이 심하다 심하다 하는 뉴스는 와 닿지 않는 막연한 무형의 공포였다면 이번 주부터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아프기 시작했거나, 확진자와 같이 일을 해서 자가 격리를 시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차 무형의 공포가 형태를 갖춰가는 것 같아서 불안하고 솔직히 무섭기도 하다.
나라고 바이러스가 피해 갈 수 있을까? '아! 이 친구는 한국에서 파견 나온 불쌍한 외노자 신세니까 내 이번만큼은 감염시키지 말고 넘어가겠네!'라고 해주면 좋으련만 바이러스에는 인종도 국경도 나이도 없는 게 아닌가... 최선을 다해 Self Isolation을 유지하고, 최소한의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결국 회사에는 나와야 하고, 먹고살려고 가끔 마트에도 가야 하고, 미치지 않으려고 가끔 공원에 산책도 간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그런 SNS에는 최대한 좋은 모습만, 그리고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만 올리게 된다. 괜히 거기에다 나 무섭네... 여기 위험해서 정말 큰일이네... 하는 걸 올리면 공감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맙기야 하겠지만 괜한 걱정에 실제로 나조차도 그 공포에 함몰될까 봐... 그리고 그런 공감도 한두 번이겠지... 그래서 애써 멀쩡한 척...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가족들이 보고 있어서 오히려... 덤덤한 척이라도 해야 걱정을 덜어줄 수 있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는 없다.
나는 뉴욕 생활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누릴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여기서 내가 살아가면서 가지는 한계... 외로움... 그런 것들을 어떻게 빼고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나 싶다. 물론 여기 뉴욕... 놀러 오면 좋다. 맛있는 식당... (은 사실 한국에 다 있지)... 놀라운 공연들... 누군가 꿈꾸는 맨해튼의 브로드웨이, 타임 스퀘어... 그런 건 아쉽게 한두 번 볼 때 좋은 것 같다. 심지어 대 코로나 시대에는 맨해튼은 공포의 도시 같아서 일이 아니면 감히 나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다 미국이... 그리고 뉴욕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처음 미국에 와서 느꼈던 불편함... 부당함... 그랬던 모든 것들이 원인이 되어서 이런 상황이 왔을 거라 생각이 들긴 한다.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뉴욕에 살고 있는 나를 보고 부러워하기도 했고, 또 이런 상황이 없이 멀쩡히 돌아갔더라면... 뉴욕에서 2년이나 살았더니 좋아?라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이제 무사히 살아 돌아가게 된다면 그런 사람들은 없겠지? 그거 하나는 다행이다.
오늘도 이렇게... 존버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해본다. 며칠 있으면 쌀이랑 마실 물이 떨어져서 마트에 가야 하는데 마트 가는 일이 이렇게 무서울 일인가 싶어서 서글프다.
2020. 4. 2
대 코로나 시대에 '뉴욕에 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