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
‘최근 너와의 대화에서 불편함이 느껴져.’
친구의 장문 메시지 중 핵심은 그 ‘불편함’이었다. 이 문장을 마주한 뒤부터 대화는 자꾸만 뒤로 밀려났고, 나는 비로소 나의 화법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본래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는 편이다. 20년째 MBTI검사를 하면 ENFP라는 결과가 말해주듯, 나는 외향적이고 감정적인 에너지를 가졌다. 초등학교가 코앞이었던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거의 하숙집이나 다름없었다. 엄마는 매일 찾아오는 친구들을 위해 떡볶이와 볶음밥을 내어주셨고, 덕분에 나는 타인에 대한 높은 수용력을 체득하며 자랐다.
하지만 문제는 관계가 깊어질 때 발생한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나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 그에게 필요하다고 믿는 말을 내뱉는다. 애정이 깊어질수록 나의 ‘직언’도 함께 짙어진다. “이렇게 하면 더 잘될 것 같다”는 조언을 쿠션어 하나 없이 거침없이 쏟아낸다. 애착을 가졌던 부서에서도, 동료들에게도 나의 솔직함은 어김없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나만의 통찰이라 믿었던 이 직언들 덕분에 누군가는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냈다. 이번 친구의 메시지도 그 상처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친구가 꽁꽁 숨겨 두었던 진실을 내가 예고 없이 들춰낸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이 원하지 않는 진실을 굳이 말로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까? 직설적인 말 한마디가 만든 거리감 앞에서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날카로운 송곳 같은 관찰력은 ‘말’이라는 수단을 통과하는 순간 흉기가 될 수 있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가야 하는 적정 거리가 있음을 이제야 배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보다 소중한 한 사람과 깊게 이어지고 싶지만, 서툰 나에게 이 거리감은 여전히 무거운 짐이다. 보여지는 감각을 잠시 숨겨야 할지, 아니면 이 날카로움을 따뜻하게 정제할 나만의 필터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솔직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다만, 그 솔직함이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도록
더 나은 방식으로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