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04 - 8] 내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각 탐구자 '시치' 인터뷰
인간은 이유도 모른 채로 잉태되고, 세상 밖으로 던져집니다. 그리곤 고유한 이름으로 불려지게 됩니다. 목적을 지닌 채 생긴 사물과 달리 인간은 존재의 이유를 살아가면서 찾아나가야합니다. 아마 죽음에 닿기 직전까지, 삶을 살아가면서 평생 답을 내리기 어렵겠지요. 존재의 이유를 탐구하면 할수록,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거치게 됩니다. 살아있다는 건 무엇이지, 산다는 것과 극단을 달리고 있는 죽는다는 개념 또한 무엇인지, 의문의 씨앗이 계속해서 싹틉니다. 여러분은 때로는 머리아프고 때로는 경이로운 연속적인 물음들을 계속해서 탐독해나가실 자신이 있나요?
오늘은 회화, 그래피티,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등 시각 예술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아티스트를 인터뷰했습니다. 내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각 탐구자 시치 님입니다. 삶과 죽음 간의 경계를 허물어 사유와 깨달음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시키는 작품들과 함께 인터뷰를 감상해 보세요.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시각 작업 전반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고, 이를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시치라고 합니다.
Q. 활동명을 ‘시치’로 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마 활동명에 담긴 의미랑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맞물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33살이지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인의 이름을 길거리에 쓰고 다니는 ‘그래피티’라는 거리 예술을 시작했어요. 그러려면 자신의 이름이 있어야 해요.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다 보니까, 외국처럼 간결하고 멋진 이름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활동명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가장 잘 어울리고 재미있는 이름이 시치면 어떨까? 박신철이라는 이름의 초성만 딴 이름이에요. 입에 잘 붙고 귀여운 느낌이 나고, 영어로 바꿔서 그래피티를 해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큰 의미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20대의 시간은 그래피티를 하면서 보냈어요. 그래피티는 사실 정체성을 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돈을 벌어오는 수단이기도 했어요. 그래피티는 인테리어나, 행사장 라이브 페인팅을 한다거나, 그래픽 디자인에 넣는 등 잘하면 돈이 되는 일이거든요. 정체성을 발현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정말 좋은 역할을 해왔지만, 어느 순간 돈이 정체성을 잡아먹는 모양새가 되기 시작한 거죠. 20대 중후반에는 돈에 혈안이 되던 시기가 있었어요. 시기가 좋아서 많은 분이 찾아주셨고, 미술 학원 강사도 하게 됐었고. 스프레이를 수입판매하는 문구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병행했어요.
기대만큼 수입도 좋았지만, 정체성이 사라져가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거예요. 번아웃이 찾아왔고, 20대 후반 막바지에 견디지 못해서 ‘안 되겠다’, ‘내가 뭘 쫓고 있는지, 뭘 추구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미술 학원 강사를 제외하고 모든 것들을 전부 그만뒀어요. 그런 뒤에 하나씩 하나씩 정리했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야 할 지 고민했어요.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하니까, 나의 이름에 대해서, 나의 작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했어요. 그 수단이 ‘그래피티’에서 ‘명상’으로 넘어가게 됐어요. 나를 찾기 위해서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더라구요. 그러다 생뚱맞게 과학, 철학에 빠지게 됐어요.
여러 학문들을 접한 후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본다’라는 사실에 꽂히게 된 거예요. ‘본다는 게 눈으로만 보는 게 맞는 건가?’ ‘주체를 인식하는 모든 존재는 주체성을 감지하는 하나의 내적인 공간을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 후에 본다는 뜻을 가진 ‘보일 시’자를 찾게 됐어요. 운명적인 건지 기묘한 건지, ‘보일 시’ 자가 병음으로 다른 뜻을 하나 더 가지고 있더라구요. 방치한다는 의미에서 ‘치’가 있더라구요. 정말 이상한 일인 거죠. 내 이름은 의미 없이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니 의미 없었던 건 없었구나 싶었어요. 지금의 작업을 하게 된 이유와 시치라는 활동명이 생겨난 이유입니다.
Q. ‘시치’라는 활동명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면서 전율이 돋는 경험을 하셨을 것 같아요.
'시간이라는 것도 안 흐르는 거 아니야?’, ‘원하는 대로 인식하고 싶을 때 인식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 정말 마법 같았어요.
Q. 명상을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많이 고민해 보셨을 것 같아요. 시치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림 자체를 좋아하게 된 거라기보다, 제일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릴 때 말을 늦게 떼서 말이 굉장히 어눌했고, 가족, 친구들이 (말투를) 재미있어했어요. 하지만 제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고, 웃음거리로 돌아가버리는 게 스스로 상실감이 너무 컸던 거죠. 그러면서 말을 잘 안 했어요. 주변에 말없는 친구들 보면 항상 땅에 모래 장난하고 있고 그러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의사 표현을 웃음거리로 만드니까, 말을 하지 않고 눈치를 보게 되더라구요. 자연스럽게 시각 작업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게 더 편했어요. 그림도 내가 생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그릴 수 있는 거란 걸 느끼면서, 정확하게 그리다 보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림이 그런 힘을 저에게 줬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 반에서 꼭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한 명씩 있잖아요. 말은 별로 없지만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 아이들이 신기해하고. ‘우와’ 하고. 그러면서 위안도 느끼고,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 것 같아요.
Q. 어렸을 때는 말이 어눌하셨다는 말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해 주시고 계세요.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부분에도 큰 변화가 오신 것 같은데,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번아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같아요. 그전에는 무조건 성사시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서 말을 하는 방식을 잘 몰랐어요. ‘되냐, 안되냐’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하고 무언가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감정을 사용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약간 뒷전이 되는 대화법을 사용했었는데.
마음속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까, 생각하는 만큼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릴 수 있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확하고 투명해진다는 걸 느꼈어요. 그때 말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29세에서 30세에서 넘어가는 과정에 느낀 번아웃이 살면서 가장 큰 터닝포인트였어요.
미술 학원 강사를 했을 때, 남에게 무언가를 알려준다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대단하지않더라도, ‘얼마나 정확한 표현으로 이 사람의 머릿속에 집어넣어줄 수 있느냐’의 능력이 가르친다는 것과 연결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도움이 많이 됐죠.
Q. 내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각 탐구자라고 본인을 소개해 주셨어요. 내세에 대한 관심이 시치님의 예술 세계에 어떻게 자리 잡게 된 건지 궁금해요.
제 삶에 있어서 또 한 가지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게 믿음에 대한 부분이에요. 굉장히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왔어요. 태어나자마자 말을 배우고,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마다 기저에 깔려있던 건 기독교적 세계관이었어요.
기독교는 천국과 지옥을 나누잖아요. 교회를 다니면 천국에 갈 사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은 지옥에 가는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살게 된 거죠. 그래서 천국에 대한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는데, 번아웃을 통해서 그것도 같이 날아가게 된 것 같아요.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없고, 그냥 내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내 머릿속에서 지옥을 만들어내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죽은 다음에 천국을 가거나 지옥을 가는 건 없구나. 죽음 이후의 세계는 잘 모르지만, 내가 믿는 대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번아웃 이후 불교적인 세계관을 새로 탐독하게 됐어요. 지금의 삶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깨닫고 죽는다면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죽어서 일정 시간 동안 어느 상태에 머무르게 될 텐데, 그 상황에서 깨달은 바를 적용하지 못한다면 다시 태어날 것 같고. 깨달은 바에 따라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절차를 밟은 다음에 헤쳐나가면 다시 태어나지 않고, 세상에 대한 집착이 없이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그 세계관의 내용을 바탕으로 보는 것에 대한 이유와 번아웃 이후에 찾게 된 언어의 표현이라든지, 과학의 이론들을 정교하게 쌓아 올리면서 시각적인 작업에 사용하게 됐어요. 그런 측면에서 내세를 기반으로 시각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게 가능해졌을 때, ‘내세를 중심으로 활동한다’라고 제 자신의 작업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시치님은 죽음 이후 찾아오는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그리고 계신가요?
사실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결과를 말씀드리자면, 왠지 다시 태어날 것 같아요. 하지만 해탈하는 방법을 알고, 다시 태어나는 걸 선택할 것 같아요.
‘삶이라는 게 존재하는 건가, 죽음이라는 게 존재하는 건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말하고 싶어요. 살아있다는 건 태어나는 건데, 태어나는 데에 이유는 없잖아요. 어느 순간에 내가 태어나는 건지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한국은 엄마 뱃속에 있던 시간을 포함하고, 서구권은 물리적으로 탄생한 시점을 포함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배아 발생을 하는 순간을 어떻게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지? 배아 발생의 가능성이 생겨난 시점에 태어나는 게 아닐까?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이 태어나는 게 아닐까? 그러려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하는데, 서로가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내가 태어나는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말장난이고, 탄생이라는 걸 믿기 때문에 삶을 시작했다고 얘기하는데.
탄생이 언제인지 다시 규정하면, 삶은 경계가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리적인 탄생을 엄마 뱃속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정해두고 시작하지만, 의식적인 탄생은 언제지? 저마다 내 생애 첫 번째 기억이라는 시점이 있을 텐데, 그때가 의식이 태어나는 시점이 아닐까? 저는 세 살 때 기억이 첫 번째 기억이거든요.
지금에 와서는 20대 후반 번아웃 이후로 바뀐 내 삶은 받아들였으니, 그때 다시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도 했어요. 그렇다면 이미 죽음을 경험한 거나 다름이 없으며, 이미 내세를 받아들이고, 내세와 이어진 삶을 이미 살고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더라구요. 이쯤 되니까 어떤 질문을 하신 건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웃음)
Q. 여태까지 주신 말씀도 그렇고, 작품이나 사전 답변지에서 삶에 있어서 종교가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교가 나의 삶과 예술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으세요?
좋아하는 작가 중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이라는 책을 내신 ‘채사장’이라는 분이 계세요. 그분이 쓴 책 중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기독교인인데. 기독교와 불교라는 두 가지 믿음의 특징의 차이를 발견하면 종교인이 된다. 종교의 특징으로붜터 철학적인 특징을 찾게 되면, 종교인을 넘어 인문학자가 된다. 인문학자가 인문학적인 바탕을 가지고 과학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그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고 자기 것으로 만들면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었어요.
종교가 제 삶에 준 영향은 그 얘기를 빗대어서 해석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대 시절, 돈을 버는 데에 집중했던 제 모습은 사회 구성원 같았어요. 기독교를 믿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회를 움직이게 만드는 부품으로서의 구성원이자 일부분이었던 거죠.
그런데 종교가 지닌 믿음의 특성에 대해 생각하고 내세관을 비교하다보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예술이 탄생하는 방식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때부터는 작가라고 얘기를 못하겠는 거예요. 나는 종교인인지, 인문학자인지, 예술가인지 모르겠고. 나를 인식하면서 주체성 있게 움직이는 하나의 개체라고 밖에 말을 못 하겠고.
그러면서 작업을 할 때 조금 더 겸손해지고. 함부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게 어리석은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워지게 됐어요. 행동거지를 차분히 만들 수 있게 되고, 분쟁이 없어지고. 조금 더 심심한 예술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내가 표현한다 한들 느끼는 사람이 있어야지, 내가 대단한 것 같아 보여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덧없음으로 남고. 있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존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나의 인생을 요리 메뉴로 표현하면 '백숙'이나 '생굴'이라고 답변 주셨어요. 마음먹지 않고 하는 도전의 연속으로 살아왔는데, 이를 흐르는 물과 같은 인생이라고도 비유해 주셨구요.
마음먹지 않고 하는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마음먹은 상태에서 도전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번아웃 이전에는 항상 마음먹고 도전해와서 실패할 때 정말 큰 상처를 받고 그랬어요. 한 만큼의 결과만 받는 게 자연의 섭리일 수도 있는데, 어쩌면 마음을 먹어서 상처를 받은 것일 테니. 앞으로 도전을 할 때, ‘그냥 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드린 답변 같아요.
욕심부리지 않고 살 때,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인터뷰 잘해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오면, 끝나고 나갈 때 분명 아쉬움이 남을 것 같더라구요. 약간의 아쉬움이 정말 커질 것 같고. ‘아쉽지 않으려면 그냥 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바램이 상처를 만들잖아요. 가족 관계라든지, 연인 관계라든지. 바램이 없으면 정말 즐거워요. 얘기하지 않고,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들이 이뤄질 때 오히려 기분이 정말 좋고. 통념상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그 다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는 것 같아요.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물방울 같은 마음을 가졌는데, 바다가 되어있었네’라고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뭐든지 물의 순환에 빗대어서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바다를 생각하면 점점 넓어진다는 개념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지만, 사실 바다가 되기 위해서는 산꼭대기에서 제일 낮은 곳으로 가야하잖아요.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특성을 보면 마음먹기 나름이구나. 어느 특성을 보느냐에 따라서 가장 넓은 존재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게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Q. 모두가 어린 시절 하던 생각을 떠오르게 해주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고 하셨어요. ‘어린 시절 하던 생각’이라고 표현해주신 이유가 궁금해요.
글만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친구랑 까르르 웃던 좋은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고. 처음으로 놀러 가서 여러 감정을 느낀 첫 번째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어린 아이들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걸 이 사람도 똑같이 볼 수 있나?’라는 의문을 갖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정확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까, 말을 믿게 되면서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철학적인 질문을 내던지거든요. ‘숨 쉬는 게 뭐야? 지금이 뭐야?’ 친구들이 육아를 하다 보면 그런 질문들에 막혀서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정말 순수한 질문들을 어떤 이해관계없이 얘기를 나누게 되는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 온전히 즐겁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나의 삶이 갖고 있는 철학이 있나요?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인가?’ 모든 생각의 출발점이고, 제 삶을 관통하는 철학인 것 같아요. 명상을 통해서 많이 느꼈어요. 명상을 하다 보면 눈을 감고 있는데,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들이 나타나 이미지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시각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였다면 본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보는 게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것만을 의미하는 걸까?'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명상을 통해 직관적으로 얻어낸 고찰과 과학 이론을 들여다보면, 과학과 철학이 닿는구나 싶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100년 전부터 시작하기도 하는구나, 시대를 전부 관통하고 있는 철학이구나. 전 인류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Q. 앞으로의 목표를 들어보고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물리적인 세계 안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길 바라는 측면에서의 목표는, 제주도 가서 작업실을 만들어 놓고 유유자적, 조용히 작업하면서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오면 대화하면서, 좁은 공간일 지라도 의식적으로 고양돼서 머릿속이 우주보다 넓어지는 경험들을 선사해 줄 수 있는 환경에 놓이고 싶어요.
내면적인 목표는, 예전에는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모르더라도 모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모르면 알면 되는 거잖아’라고 마음먹고 하지 않는 도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계속. 예전에 삶을 통해서 이런 걸 알아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죽어서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야, 죽어서 방황하다가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서야’라고 대답한 적이 있어요. 그런 것 같아요.
살아간다는 건 세상 밖으로 던져진듯한 느낌을 줍니다. 내가 나로써 살아가기까지 모든 과정이 온전히 나의 선택이 아닌, 외부 세계에 의한 것들처럼 느껴집니다. 참으로 수동적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오늘 시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럼에도 어떤 인간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은 어린 시절을 스쳐지나가게 만드는 순수한 질문과 깨달음의 과정들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 폴 부르제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선택했나요?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나요, 사는대로 생각하고 있나요? 오늘의 인터뷰가 주체적인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신 시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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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W는 삶이라는 예술을 들려주시고 싶은 모든 예술가 분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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