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

[S.04-9] 내면으로 향하는 문을 열다, 조정범 (Hannah)

by LLW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계신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셨던 순간이 있나요? 그럴 땐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어왔으면서도 정작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란 어렵습니다. 항상 나의 좋은 면만 간직하고 싶고, 훌륭한 사람으로만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죠.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은 부끄럽기도 하고, 외면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모습 조차 나의 모습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은 사바나의 바닷가에 비친 달을 통해 내면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균형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아티스트 조정범 (Hannah) 작가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작가님의 다양한 정체성이 느껴지는 작품들과 함께 인터뷰를 감상해 보세요!




Q. 소개 부탁드릴게요.


Hannah, 조정범이구요. Moon-Door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입니다. 사진을 기반으로 위에 자개(선)을 붙여서 내면으로 향하는 문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다가 미국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졸업 후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진을 전공했지만 3학년 때는 상업 사진, 패션 사진 분야로 나가려고 했어요. 그러다 어떤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 나라에서 생활한 경험들을 토대로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됐어요.


다른 인종들과 섞여서 대화하면서 나는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됬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정체성에 있어서) 사유의 충돌들이 많아 자신을 깊이 알아가기 위해 질문을 하면서, 예술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첫 작품이 지금 진행하고 있는 Moon-Door에요. 그 프로젝트를 통해서 진정한 제 자아를 만났고, 지금도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어 나가며 날로 달라지는 저를 만나고 느끼는 중입니다.




Q. 작가님의 작품에는 한국적인 요소들, 자연적인 요소들이 많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에 담긴 정서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건가요?


한국은 산이 되게 많은 나라잖아요. 제가 있던 미국 남부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평지라, 외롭고 삭막한 감도 있었어요. 그런 마음을 한국에 있는 산 사진을 보면서 달랬던 것 같아요. 항상 한국에 가서 산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3학년 때 그 수업을 들으면서 ‘멀리있는 산을 그리워할 게 아니라, 여기에서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남부 지역 바다 근처에 살아서 해변을 자주 다녔어요. 이전에는 바다에 갖는 감정적인 연결점이 없었는데, 바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보니, 바다가 산을 대체하는 과정이 생긴 것 같아요. 우연하게 보름달이 밝게 뜬 밤에 바다를 간 적이 있어요.


물가에 앉아서 달을 올려서 봤는데, 바다에 아무도 없고 달 아래 저 혼자 있는데. 혼자라는 느낌이 외로운 게 아니라 그 순간이 너무 포근한 거예요. 제 스스로가 제 삶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강렬히 들었어요. 그런 강렬함과 동시에, 항상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지,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구나 느꼈어요. 내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아야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Moon-Door 프로젝트에 ‘달과 함께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게 되었다’고 작가노트를 작성하게 됐어요.



조정범 (Hannah) 작가가 내면의 자신을 마주하던 순간 [ 사진 제공 : 조정범 (Hannah) ]
It all started with this image. It was full moon night by the ocean.
That night, I felt like there was nothing, no one under that bright full moon except that moon and myself. But it wasnt lonely or sad, it was more of warm relief.
I felt like I finally saw my true self, the moon was revealing something that has been hidden from the deepest part of the ocean.
Maybe I was that pearl under the ocean.
That night, I opened the door to my inner world with bright full moon. And knew everything was perfect the way it was, I knew I was on the right path or that there was no wrong path in this world.

Moon-Door Project [ 출처 : 조정범 (Hannah) 작가 인스타그램 @hannahjojungbom ]




Q. 달과 함께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고 하셨어요. 흥미로운 표현이예요.


문이라는 게 영어로는 Moon(달)이고, 한국말로는 열고 닫는 문을 의미하잖아요. 상징적으로 그날 밤 보름달 안에서 내면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달은 인류의 무의식, 영성, 문화 와도 맞닿아 있어요. 언어가 있기 전에 인간의 역사를 보면, 달을 빌어서 시간을 재고, 달 아래서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열고, 또 여자의 월경 주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록이 있잖아요. 달이 인간의 문화에 그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도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되게 생소할 수도 있는데, 달의 기운을 받은 마녀들이 마법을 부린다는 말도 있고. 항상 변화하는 달이 신성하기도 하고, 동양사상에서 음을 상징하는 여자와의 관계가 재미있어요.


Q. Moon-Door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음가짐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그전에는 항상 남을 신경 써왔어요. 바깥 세상의 기준에 맞는 나를 만들어가려고 애를 썼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하게 내면의 소리에만 귀 기울였던 것 같아요. 내가 지금 행복한가? 정말 원하는 건 뭔가? 그 질문에만 집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방해물 없이 온전히 내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날 밤’ 이후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정말 한 순간인 것 같아요. 생각의 변화는 그렇게 어떤 한 순간에 찾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Moon-Door Project [ 사진 제공 : 조정범 (Hannah) ]


Q. Moon-Door 프로젝트 이외에도 이모티콘을 활용한 작업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언어가 발전하기 이전에도 인간은 동굴 벽화에 그리던 상징적인 요소들이 있었잖아요. 그게 현대에 들어서는 이모티콘으로 발전했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어요. 그렇게 재미있게 생각을 하다가, 학교에서 여러 종교에 대해 배우면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심볼들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기독교나 아프리카 종교, 남미 인디언 토착 종교의 상징들을 탐구하면서 (심볼들에) 공통점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모든 인류가 하나의 뿌리에서 왔구나.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캐치하지 못하고 있지만 상징적으로 봤을 때, 인류는 하나구나. 여러 종교나 믿음, 신앙에서 받은 영향을 토대로 이모티콘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두 프로젝트의 작업 방식이 완전히 다른데, 작업에 임하는 마음에도 차이가 있나요?


되게 달라요. 저는 Hannah라는 이름이랑 ‘조정범’이라는 이름 두 가지를 갖고 있어요.


핸드폰으로 사진을 빠르게 찍고, 이모티콘을 붙여서 빠르게 작업을 할 때는 ‘Hannah’라는 정체성에 입각하는 것 같고. Moond-Door라는 작업은 ‘정범’이라는 정체성으로 진행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스타그램도 두 개로 나눠 쓰고 있어요. (웃음)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결과물들이 너무 다르니까 (나눠서 업로드해야) 다른 사람들도 보기 편할 것 같더라구요.



Contemporary Symbolism [ 사진 제공 : 조정범 (Hannah) ]



Q. 나의 이중성을 맞닥뜨리는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하셨어요. Moon-Door 프로젝트를 통해서 발견했던 이중적인 자아는 무엇이였나요?


여러 나라에서 생활했고, 이름도 두 개를 가지고 있잖아요. 하나(Hannah)라는 영어 이름은 필리핀 유학을 가서 스스로 부여한 이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정범’은 부모님이 주신 이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정범이라는 이름이 여성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이름이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유학을 갈 때는 ‘하나’라는 완벽히 여성스러운 이름을 짓게 됐어요. ‘하나’라는 이름으로 십년간 불려왔지만, 한 사람이라도 항상 일정할 수 없잖아요. 음과 양이 있듯이 한 사람에게도 다양한 면이 있는데, 특히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제가 갖고 있는 이중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맞닥뜨리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처음엔 정말 혼란스럽고, 확실해지면 좋겠고. 하나의 정체성이길 원해왔어요.


그런데 사바나의 바닷가에서 보름달을 봤던 그날 밤에, 이 모든 모습이 나니까 한 면 만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나의 모든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지한) 이후에 아날로그 작업 방식을 해보기도 하고, 디지털이나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작업 방식을 해보기도 하고. 혼란스럽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조화를 이루어 가기 시작했고, 그런 부분에서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충돌하는 부분을 조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느껴질 때. 모든 다양성을 느낄 때. 살아있다고 느껴요.


Q. 이중적인 자아까지도 받아들인다는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까지도 받아들인다는 게 정말 괴롭잖아요. 자신의 모든 모습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볼 때, 자기 자신에게 늘 100% 솔직할 때가 없잖아요. (무의식적으로 라도)자기 자신에게 변명하고, 부정하게 되고.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먼저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대로 나의 모든 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욕심이 많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걸 포장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먼저 직시를 하고. 그래야 왜 욕심이 많은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이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 줬으면 좋겠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제대로 봐야지만 나에게 다음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 거 같아요.



Q. 이중적인 자아까지도 받아들이는 게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으세요?


모든 순간에 감사함을 갖게 됐어요. 모든 순간 순간이 내 선택에 의해서 왔다는 걸 깨닫게 된 거고, 남을 탓할 것 없이 내 마음이 여기로 이끌려 왔기 때문이란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순간에 감사하고, 또 다가올 미래에 감사하게 됐어요. 그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Moon-Door 프로젝트도 이미지를 프린트 한 뒤에, 자개 선을 붙이는 작업이라 굉장히 치유적이에요.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머리, 마음을 비우고,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문을 시각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거든요. 자가 치유적인 면이 강한 작업 같아요. 이 프로젝트로 인해 내면의 자아를 만났고 그 덕분에 제 이중성을 받아 들이게 되어 감사해요.




Q. 앞으로의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의 목표를 들어보고 인터뷰 마무리할게요.


예술가기도 하지만 우선 저는 한 사람이 잖아요. 지금 다니는 직장도 예술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거든요. 창작과 관련없이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또 다양한 일로 돈도 벌고. 그런 삶의 순간 순간이 있어야 진정한 프로젝트가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삶을 예술에 바치는 모습도 정말 존경스럽지만, 저는 그냥 한 사람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 제 삶을 여러 프로젝트에 담아내고 싶어요. 현재로서는 Moon-Door 와 이모티콘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해 가고싶어요.

예술가로서 크게 꿈꾸고 있는 건, Moon-Door 프로젝트가 제 치유의 결과물인 셈이잖아요. 다른 분들이 작품을 보면서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내면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내고 싶어요. 제가 답을 대신해줄 수는 없지만, 대신에 그 분들만의 대답을 찾을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예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인지하지 못했고 외면해왔던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른 이들과 세상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모든 단계들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읽고 있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내면을 조금 더 사랑해줄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을 보내셨길 바라며,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조정범 (Hannah)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실 작가님의 행보를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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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 아티스트 분들은 자유롭게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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