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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G씨 May 27. 2021

N년째 배우는 중입니다 [1]

매일 열심히 산것뿐인데,어느덧 20년째 학생으로 살고 있습니다.


… 그는 입을 다물고 흥얼거렸다. 그 말이 끝나자 그의 머릿속에는 몽롱한 가운데에 하나의 천재가 열등생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 가선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온다. 결국 이 열등생이 되기 위해서 꾸준히 고생해 온 셈이다. 차라리 천재이었을 때 삼십 리 산골짝으로 들어가서 땔나무꾼이 되었던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천재라고 하는 화려한 단어가 결국 촌놈들의 무식한 소견에서 나온 허사였음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못 된다. 그들은 천재가 가난과 끈질긴 싸움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열등생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 서정인, <강>




  

    미취학 아동 시절,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이모가 나를 돌봐줄 때면, 한 자리에 앉아 같은 책을 수도 없이 보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 때로는 역사책을, 때로는 문학을 붙잡고 읽던 그 아이가 어른들의 눈에는 어여쁘고 기특해 보였을 일이다. 


    어렸을 때는 가만히 앉아 달리 할 것이 없어서, 초등학교에서는 공부가 쉬워서, 중학교에서는 괴롭히던 아이들과 다른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 고등학교에서는 무시받고 싶지 않아서 - 나는 그렇게 수년을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건 공부만 한 것이 없다고 듣고, 배우고, 느끼며 참으로 열심히도 해왔다. 좋은 학교, 좋은 성적, 선생님들의 칭찬과 존중을 받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내가 있고 싶은 자리가 어디인지 고민하는 대신 조금 더 어려운 일, 조금 더 높은 성적을 향해 욕심을 내는 데 바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게 나의 타고남이고 본질이라 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가장 가고 싶었던, 누군가에게는 동경 내지는 부러움의 대상이라 불리는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이제부터는 '그동안 열심히 해온 결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일'이 기다리고 있는 줄만 알았다. 새로운 학문, 직업, 진로가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작 그것들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은 나 자신이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음을 깨달은 것은 총명한 학우들의 눈빛에 주눅이 들었을 때도, 무엇이든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내가 무엇을 기다려왔는지에 대한 답을 잃었을 때였다. 


    그렇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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