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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G씨 May 27. 2021

N년째 배우는 중입니다 [2]

길을 잃어버린 온갖 준비생들을 위한 방랑 일기




    6년, 3년, 3년 하고도 4년 간을 더 학생으로 살았다. 그동안 나는 꿈이 없는 아이로 살아온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꿈이 너무도 많았다. 디자이너, 치과의사, 외교관, 인류학자, 화가, 작가, 큐레이터 …. 좋아하는 것이 많았다. 멋져 보이는 것이 많았고, 궁금한 것이 많았다. 또 한편으로는, 어떤 꿈을 꾸게 되든 다음 단계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학생밖에 해본 적 없는 자의 본능이었으려나.


    학교에서는 때가 되면 진도에 맞춰 공부를 하고, 또 범위가 정해진 시험을 본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칭찬을 받고, 다시 다음 단계의 진도를 나가고 또 시험을 보고 또 성적을 받는다. 1학년, 2학년 학년이 올라가고, 학년이 끝나면 다음 학교에 진학한다. 그 틀 안에서 내가 해야 할 고민이라곤 '어느 학교 어느 과에 갈 것인가'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 고민들을 참 수월하게도 하나씩 넘어왔다.   


    학교라는 틀 안에서 나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살아내었다. 명문대학교, 상위권의 성적, 부족하지 않은 스펙 - 학교라는 소속이 있는 학생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었다고 말해도 자만은 아닐 것 같다. 말하자면 학교의 나이스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입시라는 오만을 부리게 되었다.



 

   로스쿨에 가겠다는 결심은,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것이었다. 전공 수업을 듣던 어느 오후, 이모와 대화를 하던 밤, 로스쿨을 다니는 선배들을 본 날, 갑자기 시험 접수를 한 여름. 그 어느 때인지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어느 이유의 조합에서든, 나는 또 한 번 입시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었다.   


    입시라는 것은 결국 학교에서 학교로의 이사인 만큼, '학교 전문'인 내게는 꽤 쉬운 결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취업 준비, 대학원, 유학, 자격증, 인턴 … 여러 선택지가 주어진 대학교 4학년 갈림길에서 나는 사회로 나가는 걸음을 이렇게 한 번 더 유예하였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로스쿨에 합격하였다.




    로스쿨 합격은 내게 축복임과 동시에 악몽이었다. 어른들은 '나중에 뭘 하고 싶어도 자격증이 있으면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다'며 나를 격려했고, 갑작스러운 진로 변경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괜스레 한 번씩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그러나 내 안은 어둠이었다. 나는 아직 아무것에 대한 아무런 답도 내지 못했는데, 모든 것이 답인 마냥 제대로 흘러가는 것 같이 대하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진심을 다해 무엇을 간절히 바라보지도 않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도 못한 채 찾아온 '로스쿨 입학'은 차라리 시나리오를 받아보지도 못한 채 연극에 내몰리는 상황에 가까웠다.




    학교를 다니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낼 거야!라고 다짐했다. 시작은 꽤나 희망차고 발랄했던 것도 같다. '그래, 어쨌든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니 여기서 이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지 고민하면 되는 거야!' 하며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나의 내면은 억지스러운 희망 코스프레를 비웃듯, 이내 나를 잠식하였다.


    치열한 경쟁, 난생처음 배우는 법, 인턴, 좌절, 비교, 그리고 다시 경쟁. 내 성적이 어떤지,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왜 이 로펌에 내가 잘 어울리는지, 나는 앞으로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가장 단순한 답 하나도 찾지 못한 내게 이곳은 너무도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그 어떤 질문에든 완벽하게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수많은 동기들이 있었다.


    2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 어느새 로스쿨 3학년, 수험생이 되었다. 변호사가 되기 전 몇 달 혹은 사회에 빼도 박도 못할 '어른'이라는 타이틀로 내던져지기 전 마지막 몇 달이 남았다. 공부하기에도 벅차고 바쁠 시기, 감상에 젖은 고민은 사치인 시기, 열등감에 지쳐 나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시기. 바로 이 시기의 나는 그러나,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 거지?'

'시험에 합격한 후의 나는 대체 뭐가 되는 거지?'

'그 무언가가 되면 나는 행복한 건가?'

'어릴 적 내가 수도 없이 상상한 어른의 모습이 맞나?'


    이 질문들을 멈추면 나는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 버려질 것만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 이곳에 버려질 수는 없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고되고 지치는 것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어떤 답도 찾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나는 그 무언가를 찾아나서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좋은 변호사든, 좋은 어른이든, 그냥 좋은 나든 뭐라도 될 것 같다.


 

 



    아직 무엇이 되지 못한 채, 그 무언가를 준비하는 이들과 이런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첫째는 나의 상황과 생각이며, 둘째는 그런 내가 얄팍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랑해온 수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브런치가 나의 이야기 책을 열어줄지 아닐지 모르겠으나,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나는 오늘의 기록을 해야겠다. 혹여 아주 늦어지더라도, 나중의 그 누군가가 열어보았을 때 타임캡슐과 같은 위안을 느낄 수 있게 말이다.



                                                                                     …



                                                         그리고 브런치는 나의 책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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