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13. 까사바트요
한 사람의 주관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들어갔을까?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
'무대 디자이너'라는 직종이 있다.
극작가의 대본을 연출의 의도에 맞게 무대 위에 현실화시키는 사람. 공연의 배경이 중세시대라면 문고리 하나도 중세의 느낌으로,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면 또 그에 맞는 고즈넉한 분위기로,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거대한 것까지 그 모든 것을 총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마술사 같은 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들이 있는데, 숨은 조력자, 바로 실제로 무대를 제작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엔 목수, 조각가, 작화가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화가와는 상황이 아주 많이 다르다. 연출가의 원하는 모습으로 무대 디자이너가 최종 시안을 작업해오면 그 도면과 스케치를 보고 그대로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
즉 디자이너의 손에서 도면이 떠나간 즉시,
무대의 생명은 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디자이너가 대형 오페라 극장 무대 바닥 전면을 삼각형의 모자이크로 채우고 싶다고 하면 작화가는 눈이 빠지게 삼각형을 그려야 하고, 무대 중앙에 건물 높이의 대형 조각상을 놓고 싶다고 한다면 조각가는 비너스의 조각상 귀때기에라도 올라서서 온몸으로 조각을 해야 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이너는 이렇게 아무것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들 없이는
절대로 원하는 바를
원하는 시간 내에 완성할 수 없다
chapter 10.
"가우디는 까사바트요를 지으면서 성가족 성당에서 일하고 있던 동료들을 적잖이 불러들였다. 루비오, 수그라네스, 주졸등이 건축을 도왔고, 조각은 오랜 친구였던 마따말라의 몫이었다. 주철로 제작된 해골 모양의 발코니 난간은 가우디가 성가족 성당의 작업실에서 만든 실물 크기의 모델을 가지고 바디아 형제가 제작한 것이다."
가우디가 죽은 후에도 그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그의 뒤를 이어 성가족 성당을 짓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의 작업이 완성되었고, 완성되고 있는지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 사람들 다 돈 받고 하는 '일' 아니냐고
맞다. 세상엔 공짜가 없기에 우리는 어떠한 거래의 목적으로 가냘픈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설령 돈을 받았다 해도, 굳이 '이 일을 하겠다' 결심한 것 자체가 디자이너에겐 큰 도움이다.
독보적인 예술성으로 현대에 와서 더욱 찬사를 받고 있는 그의 작품에 가려져 비록 자신의 이름 하나 알아주는 이 없는 억울함이 있더라도 말이다.
무대 뒤 어둠 속에 있더라도
빛나지 않는 건 아니다
가우디는 스승이 지었던 노후된 집을 의뢰받아 1904년에 이 '까사바트요' 재건축을 시작했다. 건물주인 바트요는 당시 섬유사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터라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멋진 집을 갖기를 원했고 특이한 작품세계로 소문이 자자했던 가우디가 적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집은 그의 이름을 따 까사(집)바트요라 이름 붙였다.
그런데 이 데코레이션의 끝판왕과도 같은 건물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우디의 도면을 받은 시공자라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 여기를 왜? 굳이? 이렇게 어렵게?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님 이런 생각이었으려나
-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욕을 하고 있을지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후자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끝까지 그의 곁에서 함께하지 않았을까.
디자이너의 훌륭한 작업물에 대한 신뢰, 이런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영광, 혹은 그저 무언가 내 손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에서 느끼는 뿌듯함 그도 아니라면 이렇게라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그 감사함 때문이라도.
이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동기는
참으로 여러 가지였을 것이다.
"가우디는 빠띠오 벽면을 다섯 가지 명도를 가진 타일로 마감했다. 가장 높은 층은 진한 청색이고 밑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색의 농도가 옅어져 흰색으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배치는 채광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의 반사율을 계산한 것으로 아래층에서 보았을 때 모든 층의 타일이 연한 푸른색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숨은 조력자들에게 신뢰를 준 이유는
건축에 대한 집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 여기 도면입니다. 이제 그대로만 만들어 주세요!"
가 아니라 그도 같이 움직였다는 거다.
항상 직원들보다 늦게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는, 수고한다는 말을 건네기보다 으름장 놓기 바쁜, 정작 자신은 일을 하나도 하지 않는 상사보다는 직원들과 함께 고생하며 그들이 하는 일들을 1부터 10까지 다 꾀고 있어 무엇이 힘들고 지칠만한지 아는, 자신 역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내고 그것을 기꺼이 결과물로 보여주는 상사가
아마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일 테니까
우리는 가우디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아니기에, 또 그를 만나본 적이 없기에 알 수는 없다.
그가 그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설계하고 만들고 짓는 것 밖에 모르는 괴짜 건축가였을지, 끓어 넘치는 신선한 아이디어의 부산스러움 속에서도 동료들을 이끌고 함께 나아갔을 장군감이었을지, 혹은 주변에 그의 디자인을 사랑한 사람들의 알게모르게식 도움을 무지하게도 받은 행운아였을지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뒤를 묵묵히 지켜준 이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
물 흐르듯 편안한 곡선의 나무 문이 소용돌이치는 천장과 구불구불한 벽면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지는 비현실적인 마감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치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있는 것 같았던 난간 손잡이의 매끄러움에서, 기둥 하나 창살 하나 조명 하나 어느 것도 대충 만들어진 것이 없는 열정이 담긴 손길에서, 유리창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은 황홀한 색채의 향연에서,
그 모든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디테일에서 말이다.
참고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 가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