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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Nov 22. 2022

망설임,헤아림

망설임 안에 깃든 헤아림.

나는 내가 망설임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망설임이 느림이고 게으름이라 생각했다.

얼마 전 발리 비치 클럽 더 로운에서 앤더슨 팍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 서있는데 더 로운 사장님이 앤더슨 팍이랑 공연팀이랑 뒤풀이를 가자고 했다. 나는 같이 온 친구들이 있어서 고맙다고 하고 보내었다. 근데 보내고 나니 아쉬웠다. 나는 더 로운의 정말 빅팬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다른 친구에게 했는데 매사에 주저함이 없는 이 친구는 “망설이지 마 “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내가 싫어졌다. 분명 더 재미있고 이익이 되는 쪽은 낯선 그 사람을 따라가는 게 맞는데 왜 나는 망설였고 기회를 놓쳤을까?


그때 찰나의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불편하고 그다음 날 컨디션이 너무 중요했다. 수업이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함께 신나게 친구들을 놔두고 홀라당 사라져 버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망설임은 며칠 내내 내 목에 탁 걸려있었다.


몇 년 전 요가원에 막 결혼한 새댁 민주 선생님은 자취를 하는 나에게  요리 팁과 요리의 재미를 자주 얘기하곤 하셨다. 그러면서 “ 내가 요리를 잘하면 음식을 좀 가져다 줄텐데, 은하 선생님 입에 안 맞을지 몰라서 못 그러고 있어요” 하시더니 며칠 후 코트스코에서 엄청나게 큰 체다치즈와 수프들을 잔뜩 사다 주셨다. 그 겨울은 참 고소하고 따뜻했다. 며칠 전 발리에서 알게 된 은애님은 “선생님, 우리 같이 밥 먹어요. 이 아줌마는 시간이 많으니 선생님 에너지가 충분히 채워졌을 때 연락 줘요. 한국음식 좋아해요? 요리를 자주 하면 좀 음식을 가져다줄 텐데, 스팸? 요리 잘 안 하시면 또 짐이니 물어봐요 제가.” 라며 은애님 안에 든 마음을 보여주셨다. 내가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도 헤아리셨다.


망설임에 대해 들여다보다  망설임 안에는 대부분 ‘헤아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과 헤아림이 있는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내 안에 망설임과 헤아림이 있을 때 상대와 커넥션이 부드러이 이어진다는 느낌도 자주 가졌다. 나는 더 느리게 섬세히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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