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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식 Jun 01. 2018

욕구인간(慾求人間)

‘먹방’과 ‘쿡방’의 인기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 문화비평 1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TV와 스마트폰을 음식이 가득 채워가고 있다. 요즘 대중문화의 흐름을 살펴보면, 소위 말하는 ‘먹방’, ‘쿡방’ 등 음식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다. 옛날엔 길을 걸으며 음식을 먹으면 어른들에게 혼이 났다. 한데 지금은 길을 걸으며 남이 음식 먹는 것을 방송으로 보며 즐거워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옛날엔 말이야’ 식의 구시대적 사고를 드러내다가는 꼰대로 인정받기에 십상이다.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다’는 말도 있는데, 이젠 그 말도 통용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러한 ‘음식’ 콘텐츠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SBS  '미운우리새끼' 돈스파이크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갖게 되는 욕구는 셀 수 없이 많다. 욕구는 남녀노소, 동식물을 불문하고, 숨 쉬는 모든 생명이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나는 이 단어가 갖는 어떠한 부정적인 이미지나 편견에 대해서 부정한다는 것을 전제로서 미리 밝힌다. 또한 인간의 욕구는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초석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나는 그 욕구 중에서 특히 ‘식욕’에 좀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이하 매슬로우)[1]는 이른바 ‘인간욕구 5단계 이론’이라는 학설을 1943년에 발표하여, 2018년 현재까지도 경영학원론을 수강하는 전국의 경영학과 신입생들에게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그가 발표한 ‘인간욕구 5단계 이론’을 재수강까지 포함하여 2번이나 공부한 나는, ‘먹방’과 ‘쿡방’에 대한 인기 요인을 고민하다가 매슬로우의 이론으로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먹방’이라는 콘텐츠가 처음 생겨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 에이브러햄 매슬로우 [Abraham H. Maslow], (1908 ~ 1970)  미국의 심리학자 철학자.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설을 주도하였으며,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사랑, 존중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에 이르기까지 충족되어야 할 욕구에 위계가 있다는 '욕구 5 단계설'을 주장하였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 네이버 이미지 검색

‘먹방’은 그 시작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한 개인방송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2008년도로 예측하고 있다. 처음 ‘먹방’이라는 콘텐츠가 개인방송을 통해서 방송되었을 때, 우리가 느끼던 욕구는 매슬로우가 주창한 욕구 단계 중 1단계로 볼 수 있다. ‘생리적 욕구’ 즉, 가장 기본적이라고 여기는 식, 성, 배설, 수면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그런 욕구로부터 기인하여 그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 이유 중 하나로 ‘대리만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콘텐츠를 통해 우리는 ‘식욕’이라는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먹방’은 ‘푸드포르노’[2]로서 소비된다는 주장 또한 많은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 식욕 충족에 대한 나의 의견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난 대리만족보다 ‘푸드포르노’로 먹방이 소비되는 것이 매슬로우의 이론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음식을 맛있게 먹거나,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을 뛰어넘는 자극을 위한 것이다. A라는 음식을 먹는 방송에서, 시청자가 A라는 음식을 먹어본 적 있다면 그 맛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먹은 A지 방송에서 저 사람이 먹고 있는 A가 아니다. 결국 내가 아는 그 맛보다 지금 저 사람들이 먹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정신적 자극이 우리의 욕구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아는 그 맛보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먹방’은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포르노 산업이 아직까지 성행하는 이유고, ‘푸드포르노’라는 하위 산업도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이다. 우리는 가장 강력한 ‘식욕’을 ‘먹방’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다.

[2] 푸드 포르노 [food porno], 1984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잘린 카워드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시각적인 자극을 극대화한 음식 관련 콘텐츠를 말한다.
푸드 포르노를 활용한 배달의 민족의 광고

‘먹방’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이, 더 빨리, 더 먹기 어려운 음식으로써 영역을 확장했다. 이것은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중 2단계, ‘안전의 욕구’에 기인한 흥행이다. 이 욕구는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재정적 등 모든 범위의 안전을 말한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두려움에 먹지 못한 특이한 음식이나, 혼자서 절대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양의 음식을 누가 대신 먹어준다면, 우리는 식욕과 안전욕을 동시에 획득하게 된다. 직접 먹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방송’이라는 매체가 행위자보다 소비자의 욕구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기에, 우리는 방송의 소비자로서 안전성을 이미 보장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먹방’ 또한 시청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좀 더 가학적이고, 자극적인 음식 콘텐츠를 보여줌으로써 더욱더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푸드파이터’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양의 음식을 제한시간에 먹는 사람을 일컫는 문화나, 그런 음식점들이 많이 생겨난 것을 본다면 이는 단순한 먹방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행태는 아닐 것이다.

Youtube '영국남자' 채널 - 핵불닭볶음면 도전 먹방

이쯤 되면 ‘음식’이 우리의 삶에 너무나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매슬로우의 욕구 3단계, ‘소속의 욕구’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므로, 사회성을 이루고 살며 어느 곳에 소속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단계다. 이것이 ‘먹방’과 무슨 관련이 있겠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나는 ‘먹방’이라는 문화 흐름을 좀 더 넓은 의미로써 생각하고 싶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방송이 아니라,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사회적, 문화적 현상과 흐름 등을 ‘먹방’이라는 키워드로 넓게 생각해 보고 싶다. 이런 넓은 의미에서 ‘먹방’의 소속욕은 SNS(Social network service)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SNS는 우리의 일상을 담아내고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창구이다. 요즈음 젊은 청년들에게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인스타그램(Instagram)은 해쉬태그(Hash tag)라는 기능으로 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그중 가장 많은 인기를 끄는 것이 바로 ‘음식’과 ‘먹방’에 관련된 해쉬태그라는 점이 중요하다. 맛집이라고 알려진 음식점의 사진을 해쉬태그와 함께 올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본 많은 사람들이 게시자가 갔던 그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고 똑같이 사진을 게시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더 많은 공감을 얻은 게시물일수록 그 욕구가 커진다. 나만 먹어보지 못했다는 그 기분이, 우리의 소속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음식이 ‘먹방’ 콘텐츠에서도 소개되었다면 더 이상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모두가 먹어본 그 음식을 나도 먹어보고 싶다는 소속욕이 더 이상 확장될 영역이 없을 것 같던 ‘먹방’을 확장했다. 그래도 확장할 것이 남았다면, 우리는 매슬로우의 욕구 4단계, ‘존중의 욕구’로 간다.

래퍼 최자의 인스타그램 캡쳐 @choiza11

매슬로우의 욕구 4단계, ‘존중의 욕구’는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다. 나는 이 욕구를 ‘공감’의 욕구로 재해석하여 ‘먹방’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나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곧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공감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단계에서 ‘먹방’이 공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인기를 끄는 ‘한끼줍쇼’, ‘삼시 세 끼’와 같은 tv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이 두 프로그램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만, ‘음식’을 먹는다는 ‘먹방’의 범주로써 같이 묶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시청자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스토리텔링’이 담겨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식욕에도 충족할 수 없다. 좀 더 고차원적인 욕구와 함께 ‘먹방’을 바란다. 그것이 ‘한 끼줍쇼’나 ‘삼시 세 끼’와 같은 공감 프로그램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저녁 밥상에 공감하고, 삼시 세 끼를 직접 해 먹으며 음식을 만드는 어려움에 공감하며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담겨있는 음식 스토리텔링을 통해 ‘먹방’으로 얻어지는 모든 단계의 욕구를 충족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마지막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는 어떻게 충족시킬까? 바로 ‘쿡방’이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

이제 모든 수동적으로 얻을 수 있는 욕구는 다 얻었기에, 우리는 직접 음식을 만들며 자아를 실현하려는 욕구에 이른다. 단순히 음식을 먹거나, 그것을 보고 상상하고 공감하는 식욕에서 나아가 직접 그들이 했던 그 맛을 구현해 냄으로써 상상만 하던 그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음식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이 논리적인 비약으로 비출 수도 있다. 하지만 식욕이라는 측면에서, 또 ‘먹방’이라는 사회적, 문화적 흐름 속에서, 보고 듣고 상상만 하던 그것을 내가 직접 만들어 내는 것만큼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는 직접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데려다가 음식을 만들게 시키는 것보다 더 큰 자아고, 음식점에 가서 그 맛을 구입하는 것보다 월등히 고차원적인 실현이다. 결국 ‘쿡방’은 ‘먹방’과 계열을 같이 하지만, 욕구의 측면에서 가장 큰 상위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욕구가 점점 단계적으로 올라감에 따라 확장을 넓혀온 ‘먹방’의 마지막 확장 단계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최현석 셰프

‘먹방’과 ‘쿡방’은 단순히 인간의 욕구로만 분석될 수 없는 현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모든 숨 쉬는 생명들의 욕구가 그러하겠지만) 인간의 발전에 초석이 된 본능이다. 이런 단계적인 욕구가 있기에 더 많은 콘텐츠가 생성되고, 사람들에게 영감과 더 많은 창의성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먹방’이나 ‘쿡방’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음식’과 관련된 콘텐츠로 현재 이상으로 확장된 영역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영역들과 결합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식욕’이라는 측면만 고려하지 않고, 다른 욕구와의 결합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진행되고 있는 절차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먹방’, ‘쿡방’이 나오더라도 나는 그것이 오직 하나의 욕구에만 치중된 것이 아니라, 좀 더 복합적이고, 고차원적인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기를 바란다. 학문도 융합하는 시대에, 욕구가 아직도 1차원적이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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