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
콜라, 사이다보다 웰치스가 좋다. 콜라는 시체를 닦을 때 쓰던거고 사이다는 그 물에서 색만 뺀거라고 누가 그랬다. 듣기만해도 소름끼치는 괴담도 한 몫했다만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난 웰치스를 먼저 고른다. 사실 따지고보면 웰치스가 그 무시무시한 콜라, 사이다보다 더 건강하다거나, 더 좋은 성분을 가지고 있는건 아닐 것이다. 더욱 화려한 색을 지녔으니 더한 색소가 들어있을테고, 콜라처럼 칼로리를 줄인 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그런 객관적 사실과 증명만으로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종종 연애를 할 때, 연인들끼리 ‘넌 내가 왜 좋아?’ 라는 달콤한 대화로 가슴 떨리는 분위기를 이어가곤 한다. (물론 나는 지난 2년간 연애를 하지 않았으나, 아니 못했으나) 하지만 그럴때마다 내 대답은 ‘그냥’ 이었다. 내 대답에 상대방은 항상 노발대발 화를 내었다. 이유는 내 대답에 깊은 통찰과 고민이 없고, 건성으로 단지 그 순간을 넘기려는 뉘앙스만 풍기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장마였다.
하지만 나에게 ‘그냥’ 은 건성으로 한 대답은 아니다. 그 사람이 좋은 이유는 분명히 많다. 이마가 동글다던지, 웃을 때 눈이 반달이 된다던지, 가끔 ‘에-?’ 같은 귀여운 말로 사람 혼을 쏙 빼놓는다던지, 2박3일을 말하라고 해도 모자를 정도이다. 물론 이런 점들이 모이고 모여서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거겠지.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다고해서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람이 좋고 싫은데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것이 나쁜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분명한 이유와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찾아가며 좋아하는 것을 경계하고 싶다. ‘이상형’ 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도 그 이유다. 나는 이상형의 이성을 만나본 적이 없다. 사랑이란 것이 항상 소나기처럼 느닷없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이 왜 좋은지 따져보다보니 결국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다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내 대답은 항상 ‘그냥’ 이다.
나에게 웰치스를 왜 고르냐고 묻는 친구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모한테 처음처럼보다 참이슬을 달라고 말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애에 있어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 가 나에겐 ‘그냥’ 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에게 ‘그냥’ 은 가장 깊은 고민 끝에 얻어낸 한마디일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무슨 소리냐면 ‘그냥’ 좋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