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식 Dec 31. 2022

무제

Adieu 2022

2022년의 마지막이 가까워진다. 모든 시간이 그랬듯 올해도 정신 없이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회사 일이,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들이, 내가 원하는 모든 욕망과 누군가 나를 통해 바라는 기대들이 그랬다. 어쩌면 그건 나라는 사람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것 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신 없는 사람이다.


내가 정신없는 사람이어서 인지 올해는 유독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죽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죽고 싶을만큼 힘들때가 있었고 죽기 싫을 정도로 기쁠때도 있었다. 삶은 집착할 만큼 내게 주어진 축복이었다가도 모든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겨운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올해는 유독 이런 우울하고 극단적인 생각들을 많이 했다. 올해 내가 잘 못 산걸까.


반대로 잘 살아간다는 건 무슨 뜻일지 궁금하다. 모든 것이 완벽해서 버릴 것 하나 없는 순간들로만 그 해를 채우는 것이 잘 산 것일까. 누군가는 인스타그램에 한 해를 행복으로만 가득 채웠다고 올리던데, 그런 게시물을 올릴 수 있어야 잘 산 것일까. 365일 이라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행복한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이런 답 없고 우울한 물음들을 쏟아내다 문득 생각한다. 그건 나와 맞지 않는다. 내게 잘 산다는 의미는 꼭 매일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그래서 주어진 일과 환경에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그것이 아주 작은 일 이라도. 날이 추워 패딩 지퍼를 힘껏 올리다가도 만원 지하철에서 사람에 낑겨 땀을 흘리면 짜증을 내곤한다. 작은 변화에도 시시각각 변화하는게 나다. 그런 내가 잘 산다는건 외부의 변화를 잘 인정하며 사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산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나라는 사람 답게 채우는 것 이니까. 그게 2022년의 매일을 행복으로 못 채운 내가 나름은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래서 올해 나는 잘 살았다.


2022년은 그런해였다. 모든게 분주하고 정신없이 바빴다. 힘들다는 말보다 괜찮다는 말을 더 많이했지만 사실은 조금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잘 살았다. 아니 잘 살아냈다. 날이 더우면 짜증을 내며 나를 시원하게 했고 날이 추우면 화를 내며 나를 따뜻하게 했으니까. 모든 일은 나를 위한 결정의 결과였다. 결코 후회하는 일은 없으리라.


2022년을 마무리하며 쓴다. 2023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의미 없는 말은 하고싶지 않다. 하지만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도 실낱 같은 빛 줄기를 찾아 나아가는 해는 되었으면 좋겠다.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