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방법 2
이번 공채에는 제대로 된 애들 좀 뽑아줘라. 반짝 반짝 빛나는 황금같은 애들 있잖아? 아니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좋고. 사업본부장이 팀장님을 나무란다. 뻔뻔한 자식이다. 올 상반기 퇴사자 절반이 그 작자 아래 직원이었다. 죽겠다고 뽑아 놓으면 기어코 내보내는 게 그 사람의 일이다. 하지만 팀장님은 또 열심히 사람을 채워 놓는다. 우리를 시켜서. 이것이야 말로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일까. 뽑으려는 자와 내보내려는자의 싸움. 그리고 고래 싸움에는 늘 새우 등이 터지는 법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우 등이 터지기 시작했다. 상반기 공채 시즌이 왔다.
나는 인사팀 팀원이다. 인사 직무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내 주력은 보상이다. 사람들 월급 밀리지 않게 주는 것이 내 주된 일이다. 하지만 공채 시즌에는 어쩔 수 없이 채용에 손을 보태야 한다. 대기업들에겐 당연하게 있는 시스템이 우리에겐 없다. 자사 리쿠르트 홈페이지에 자기소개서를 접수하면 알아서 지원자들을 분류해주는 그런 기술이 없다. 애초에 그런 시스템을 도입할 돈이 없다. 군대에서 잡초를 제거할때 제초제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군인 월급이 제초제보다 더 싸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군대는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가 직접 한다. 내 월급이 대기업 한 달 인터넷비보다 훨씬 싸니까.
우리는 중소기업이지만 그래도 지원자가 꽤 된다. 솔루션 개발직군에 벌써 100명이 이력서를 넣었다. 제발 지원을 철회해 달라고 메일을 넣고 싶다. 돈만 주면 어디든 일하고 싶다는 사람 있냐? 후. 너네는 이런데 다니지 마라. 그렇게 임시보관함에 100통의 메일이 쌓인다. 그 메일은 아직도 부치지 못한다. 밥 벌이는 신성한 것이니까.
어쩔수 없이 하나 둘 이력서를 열어 본다. 그들의 이력서를 보고 엑셀에 정리하는게 내 일이다. 목숨같은 칼퇴를 지키기 위해 대충 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나도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언젠간 나도 또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영원히 미생인 나에게 잠시라도 완생이 된 것 같은 착각은 금물이다. 겸손은 교만을 이긴다.
하지만 겸손도 무성의를 이기진 못한다. 겸손하게 이력서를 읽어가려 했지만 연속되는 무성의한 이력서에 이내 실패한다. 이전에 썼던 이력서를 그대로 복사해 온 것부터 한 줄 짜리 지원서까지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이력서를 그대로 복사해 오는 것은 이해한다. 워낙 지원할 곳이 많으니까. 근데 회사 이름은 좀 바꾸자. 실제로 보면 가장 기분 나쁜 것이 회사 이름을 다르게 적은 케이스다. 한 줄 짜리 지원서는 아마 국가 지원금을 타기 위한 증빙용 일 것이다. 어느 회사라도 구직 활동을 시도한 증빙을 내면 국가에서 취업 준비생들에게 돈을 준다. 내 세금이 이런 노력도 안 하는 놈들에게 돌아간다는사실에 피가 솟는다. 하지만 그래도 참아야 한다. 나도 누군가의 혈세로 술 사 먹은 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허수로 분류되는 약 30여명의 이력서를 걸렀다. 과연 남은 사람 중에는 빛나는 황금을 찾을 수 있을까. 토익 점수가 900 이상인 사람들일지, 학점이 4점 이상인 사람일지 모르겠다.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400자로 적어 놓은 사람이 적당할까. 생각해보면 그들이 지금껏 살아온 모든 삶이 고작 점수 몇 점과 한 페이지의 소개서로 판단 받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나도 안다. 그렇기에 그 한 자 한 자에 담긴 가치를 헤아리려 노력한다. 내 눈에 그들은 모두 빛나는 황금들이다. 하지만 그건 오직 내 눈에만 그렇다는게 문제다. 난 아직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 서툴다. 이 일을 얼마나 해야 결정권자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을까. 내심 그 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업본부장이 말한 황금인재에 대해 떠올린다. 어쩌면 일주일 내내 야근하고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다음날 지각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 일수도 있다. 그러면 컴퓨터가 아닌 체육을 전공한 지원자를 뽑아야 겠다. 코딩 실력은 좀 떨어져도 체력은 반짝 반짝 빛날 테니까. 아니면 대기업 인터넷비보다 싼 월급에도 개의치 않고 뼈를 묻겠다 다짐하는 의리의 사람일까. 어쩌지, 우리나라에 김보성은 한 명인데 우리는 본부장이 내보낸 수만큼 뽑아야 한다. 심란하다. 어차피 결정은 그 사람의 몫인데 왜 내가 심란할까. 어쩔 수 없이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대해 생각한다. 일자리 수요보다 노동 공급이 더 많다고 쓴 경제학자들이라도 탓해야겠다. 누구라도 책임져야지. 어차피 그 사람들은 책에만 있으니까 이런 책임 100번도 더 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황금 인재에 대해 생각한다. 공채 시즌만 되면 늘 고민이 된다. 팀장님은 채용을 거듭할수록 사람에 대한 확신이 줄어든다고 했다. 모두들 누구를 뽑느냐에만 혈안이다. 그리고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황금 인재를 맞이할 황금 기업이 되어 있을까. 입사한 지 고작 2년도 안된 사원만 할 수 있는 치기 어린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황금 기업에는 황금 인재가 모인다. 바로 옆 카카오 같은 회사엔 모든 지원자가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한다. 당장 회사 로고를 노란색으로 바꾸자고 건의해야겠다. 그러면 아마 노란색 페인트를 사오라고 하겠지. 노란색 페인트로 덕지덕지 칠한 황금에는 빛이 나질 않는다. 빛 없는 황금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 글을 사업본부장에게 바친다. 황금 인재는 없다. 황금 기업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