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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애 Aug 22. 2023

여행 사진 대신 영상 남기기

춤추러 간 유럽


부다페스트는 작은 도시였지만 구경할 곳은 많았다. 이벤트는 목요일 늦은 저녁부터 월요일 이른 아침까지로, 워크숍을 포함한 모든 일정에 참가하면 그동안 관광을 다닐 시간은 거의 없었다. 틈틈이 구경 다닐 시간도 없을 거라고 예상한 나와 일행은 관광을 위한 일정을 만들었다.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표를 끊고, 도착하자마자 짐만 던져두고 바로 관광을 나온 것이다. 


그날 일정은 하루 만에 부다페스트 시내의 유명한 관광지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시내가 그렇게 크지 않은 덕분에 카페와 바에서 쉬면서도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었고 춤을 출 여유도 있었다. 관광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배경이 멋진 곳에서는 춤을 추며 기념 영상을 남기고 싶었다. 일부러 맞춘 건 아니었지만 관광 인원은 리더 두 명과 팔로워 세 명으로 돌아다니면서 춤을 추기에 적당한 비율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쉬지도 않고 돌아다닌 탓에 겔러트 힐(Gellert Hill)에 오른 직후에는 바로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헝가리를 둘러볼 수 있는 일정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아껴둔 체력까지 써야만 했다. 도시의 풍경을 구경하다가 지쳐 카페를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자며, 부다성 앞의 벤치에 앉았는데, 널찍한 광장에 가끔 지나가는 트램, 아름다운 부다성과 다뉴브강이 양옆에 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풍경에, 여기가 영상을 찍기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말은 힘들다고 하면서도 춤 영상을 찍자고 하니 지친 다리를 일으키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춤을 출 사람과 영상을 찍을 사람을 나누고 적당한 음악을 골라서 틀었다. 바닥이 미끄럽지 않아서 매끄럽게 돌 순 없었지만, 걷는 스텝으로는 춤을 출 수 있었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끼리 춤추며 기념사진과 영상을 잔뜩 남길 수 있었다. 



부다성을 지나 어부의 요새까지 느긋하게 이동해서 야경을 보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바(Bar)에서 쉬면서 한참 기다렸다. 해가 지자마자 강 건너로 보이는 국회의사당에 점차 불이 들어왔다. 나중에는 빛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밝은 조명이 들어와서 춤 영상을 찍기 좋아 보였다. 


어부의 요새에서 관광객들이 흔히 남기는 사진은 국회의사당이 잘 보이는 난간에 걸터앉아 아련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강 너머로 밝은 빛을 뿜어내는 국회의사당과 어부의 요새 바로 아래에서 쏘는 조명으로 인해 카톡 프로필로 쓰기 적당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 


개인 소장용 춤영상 - 어부의 요새


하지만 우리는 댄서이기에, 그런 흔한 사진보다 더 특별한 영상을 남겼다. 어부의 요새에서 춤을 추면, 부드럽지만 역동적으로 춤추며 움직이는 인물들 뒤로 요새 사이사이로 보이는 국회의사당을 볼 수 있다. 영상에서 괜찮은 장면은 사진으로도 뽑을 수 있으니 일부러 다양한 각도로 움직이며 영상을 찍었다. 


춤을 출 수 있고 다른 댄서들과 함께 여행을 다닌다면 항상 갖고 있는 로망은 멋진 배경을 뒤로하고 춤추는 영상을 찍는 것이다. 부다페스트는 오래전에 지어진 유럽 건축물들이 현대적인 조명과 함께 어우러져 로망을 충족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이런 곳에서 흔한 사진이 아니라 나만의 사진과 영상을 남기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특별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고정 파트너가 없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댄서들과 여행을 갈 때면 원하는 곳에서 그 순간의 춤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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