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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애 Aug 22. 2023

같이 추면서 내 장점 더하기

춤추러 간 유럽


부다페스트는 챔피언 잭앤질(Champion Jack & Jill)이 아니라 인비테이셔널 잭앤질(Invitational Jack & Jill)을 했다. 잘 추는 사람들의 레벨로 나눠 대회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초대받은 사람들끼리 잭앤질을 한 것이다. 레벨별로 묶인 것이 아니기에 공식적인 점수가 기록되지도 않고, 순위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따지자면 친선경기에 가깝기에 더 부담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컨트리, 디스코, 틱톡, 새로운 음악 중 원하는 카테고리를 선택하면 나올 음악을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앞부분을 짧게 들어보고 이 음악에 출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임의의 파트너를 뽑고 나서 같이 음악을 들을 때, 둘 다 모르는 음악이라면 빠르게 다른 음악으로 넘어갔지만, 한 명은 잘 알고 있고 자신 있다면 설득을 시도하기도 했다. 



Ben과 Emeline이 파트너가 되고, 처음 틀어준 음악으로 <YMCA>가 나왔을 때 둘 다 어색한 표정이었다. Emiline은 팔을 뻗어 몸으로 Y, M, C, A를 만들어 아는 음악인가 싶었다. 하지만 자신 있는 표정이 아니라 왠지 모를 표정 때문에 진행자가 괜찮냐며 물어봤다. Emeline은 YMCA를 들었을 때, “Why I’m CA?”로 듣고 CA가 뭔지, 음악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이 음악은 둘 다 표현하기 어렵다고 봤다. 다음으로 나왔던 음악은 <Billie Eilish>였는데 Emeline이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보여 이 음악으로 결정했다.


Emiline은 팔다리가 가늘고 긴 편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어떤 동작을 하는지 알기 쉬운데, 특히 물 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동작 등이 돋보인다. Ben은 음악을 잘 듣고 파트너에게 잘 맞춰주는 편이다. 파트너가 새로운 동작을 보여주면 어색해도 그 동작을 따라 하거나 파트너를 돋보이도록 받쳐주는 센스가 뛰어나다. 


이 무대에서는 중간에 Emeline이 Ben의 앞에 서서 뒤로 기대며 박자에 맞춰 상체를 눕혔다가 천천히 일어났는데 이후, Ben이 비슷한 동작을 따라 했다. Emeline의 앞에 서서 뒤로 기댔다가 음악에 맞춰 번쩍 일어났다. 파트너가 독특한 동작을 했을 때도 이를 잘 따라 하고, 음악에 기가 막히게 맞춘다는 점은 Ben만의 독보적인 장점이다.  




가장 감탄하며 봤던 무대는 Semion과 Tatiana의 춤이었다. Tatiana는 챔피언 중에서도 남다르게 미친 것 같은 춤을 많이 추는 걸로 유명하다. 이들이 선택한 <Toxic Pony>는 틱톡에서 섹시한 춤으로 챌린지를 많이 하는 음악이다. 이 음악을 듣자마자 Tatiana가 한 일은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친 것이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의자 하나를 무대 중간으로 옮겼고, 이어 Tatiana는 Semion의 아내인 Maria에게 미리 사과했다. 


Semion이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로 음악이 시작되었고, Tatiana는 의자 아래를 지나 Semion의 다리를 벌리며 지나가는 것으로 춤을 시작했다. 의자에 앉아있는 Semion의 바로 앞에 서서 섹시한 춤을 보여주다가 Semion에게 손을 뻗어 목을 잡고 돌며 이게 바로 유혹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사냥감 주변을 배회하는 사자처럼 의자 주변을 돌다가, 의자 위로 올라가서 다리를 돌려차며 운동 같은 동작을 하기도 했다.


Semion의 다리 아래로 림보 하듯 넘어가다가 얼굴이 다리 사이에 살짝 걸리기도 해서 춤추는 와중에도 Maria(Semion의 아내)에게 사과하는 손동작을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Tatiana의 몸을 뜀틀처럼 뛰어넘기도 해서, 내가 보고 있는 게 춤이 아니라 묘기인가 싶었다. 2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상상하기도 힘든 동작을 잔뜩 보여준 덕분에 누구보다 많은 쿠션을 받았다.





리더와 팔로워의 인원이 동일하지 않아서 한 팔로워는 두 명의 리더와 춤을 췄다. 한 번 더 추는 사람을 결정하는 것도 뽑기로 했는데, Victoria가 두 번 추게 되었다. Victoria는 리더가 춤을 이끄는 걸 방해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최대한 몸으로 표현하는 팔로워다. 음악에 딱 맞춘 것 같은 동작을 볼 때면 음악을 가지고 논다고 느껴진다. 힙합을 배웠던 덕분인지 힙합 느낌으로도 잘 추고, 어릴 때부터 춤을 춰서 몸도 유연하다.


Olivier와 출 때는 유연함이 돋보였다. 거의 90도 각도로 허리가 뒤로 꺾이며 시작했는데 Olivier는 그 동작을 따라 하다가 절반도 못 가 허리를 짚으며 포기했다. 대신 춤추는 중간에 다리를 180도로 만들며 유연함을 자랑했다. 의도해서 보여주려던 것보다는 미끄러지며 자연스레 다리가 벌어진 것이었지만 그 모습을 본 Victoria는 다음에 이어지는 동작에서 파트너의 동작을 따라 했다. 제자리에서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순차적으로 내려가더니 자신의 힘으로 일어났다가 다시 앉으며 한 번에 다리를 180도로 만들었다.



Thibault와 출 때는 음악 한 곡에서 강조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몸으로 표현했다. <Jiggle Jiggle>은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많았는데도 모두 표현했다는 게 대단했다. 그저 부드럽거나 박자만을 맞추며 예쁘게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때로는 가사를 듣고 때로는 악기 소리나 박자를 표현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순간마다 몸을 써서 표현했다. 그런데도 과해 보이지 않고 전체적인 춤을 해치지도 않았다. 매 순간 큰 동작으로 음악을 표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볍게는 어깨춤을 추거나, 발을 평소보다 높이 들며 박자를 표현한다거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작들 사이사이에 새로운 움직임들을 추가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동작들이 음악에 맞으니, 음악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각자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파트너 댄스에서 보여주니 모두가 남들과는 다른 춤이 되었다. 어떤 음악이 나올지 안다고 해도 임의로 뽑은 파트너와 즉흥적으로 춤을 추니 항상 같은 춤을 추지는 않지만, 나만의 무언가를 더한 춤과 아닌 춤은 확연히 다르다. 만약 앞에서 췄던 Tatiana나 Emeline, Victoria가 자기만의 특징 없이 그저 리더가 하라는 대로만 춤을 췄다면 재미없는 춤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장점은 계속 춤을 추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대방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뭐라도 시도하다 보면 내가 춤의 어떤 점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떤 장르의 음악에 잘 추는지, 가사를 듣는지 박자를 듣는지에 따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생긴다. 그렇게 잘 출 수 있는 부분이 생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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