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애 Aug 17. 2023

실수해도 괜찮아

춤추러 간 유럽


부다페스트 이벤트에 참가했을 때, 단체 공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벤트에 가기 한참 전부터 JT Swing Team(JT Swing Team은 웨스트 코스트 스윙에서 가장 유명한 댄서 커플인 Jordan과 Tatiana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든 팀이다. 한 시즌인 6개월 동안 안무를 외우고 연습해서 공연한다.)에 참가해서 안무를 외우고 있었는데 마침 안무를 같이 준비한 파트너와 함께 이벤트에 갔기 때문이다. 


이 안무로는 공연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부다페스트에서는 안무를 만든 Jordan, Tatiana와 함께 공연하게 되었다. 잘 추는 사람에게 시선이 가기 마련이니 다른 팀원들에게는 시선이 덜 가는 효과를 노린 듯했다. 


나에게는 근 몇 달간 연습해 왔던 안무를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는 자리였다. 게다가 부다페스트 행사는 유럽의 큰 행사 중 하나로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부담감이 전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맨 뒤 구석진 자리라 크게 눈에 띄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첫 순서로 입장해야 하는 위치였다. 막상 입장하고 나니 옆에서 구경하는 관객이 코앞에 있어서 당황했지만, 심호흡하며 음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연습했던 음악과 조금 다른 음악이 나왔다. 안무를 연습하면서 처음 춤을 시작하는 부분을 맞추기 어려워 앞쪽에 두 박자 정도가 추가로 들어갔는데 수정되기 전의 음악이었다. 리허설에서는 변경된 이후의 온전한 음악이 나왔는데 본 공연에서는 실수로 이전 음악을 튼 것이다. 


그 덕분에 춤추는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대부분은 음악을 잘못 틀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맞춰서 춤을 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전 버전에 맞춰 안무를 시작했다. 이전 음악도 충분히 연습했으니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Jordan을 포함한 일부 커플은 음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춤을 시작하지 않고 음악 변경을 요청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음악. 이전 버전의 음악이 다시 나왔다. 이전과 동일한 음악에 비슷한 모습을 보였지만 Jordan이 춤을 시작하지 않았기에, 대체 무슨 이유인지 진행자가 물어왔다. 이전에는 음악을 놓쳐서 다시 시작한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음악이 변경되었는데 이전 버전의 음악이 나왔던 것을 설명했고, 진행자가 상황을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세 번째로 다시 시작된 공연. 드디어 바뀐 음악이 제대로 나오면서 안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음악이 잘못 나왔던 덕분이지만, 음악 변경을 요청하며 조단이 실수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부담이 덜어졌다. 앞선 단체 실수에도 사람들이 웃음과 박수로 응원하는데 구석에 있는 내가 실수한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연습한 보람이 있는지 거의 모든 동작을 틀리지 않았다. 연습하며 항상 틀리던 동작을 무사히 넘어가고, 이제 모든 고비를 지났다고 생각했다. 잘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잠깐 긴장을 놓은 탓이었는지 평소에 잘 외우던 동작을 틀렸지만 바로 수습하고 다음 동작을 이어갔다. 허둥지둥하다 다음 동작까지 놓치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에 있던 관객이 내가 틀린 걸 알아차리고 수군대는 것 같았다. 


내 실수를 다른 모든 사람이 보고 수군거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안무가 끝나고는 다들 미친 듯이 기뻐하며 날뛸 뿐이었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과정도 설명하지 않아서 다들 부둥켜안고 방방 뛰다가 슬금슬금 무대 뒤로 들어갔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라이브로 중계된 영상을 보던 사람이 녹화본을 공유했다. 그리고 영상을 본 사람들은 모두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 실수가 보이지 않았냐고 했더니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연 영상에서 틀렸던 동작을 찾으려고 했지만, 무대 구석에 있던 덕분인지 틀린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모두가 정확하게 안무를 맞춘 것 같은 모양새였다. 


영상을 보니 다른 사람의 실수가 보이긴 했지만, 그 순간에도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안무를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오차 정도로 보이는 동작들인지, 그저 멋진 춤을 보았다며 넘어가는 듯싶었다. 내 실수는 나에게는 아주 큰 실수였지만 실제로는 실수인지도 모르는 아주 작은 무언가에 불과했다. 


만약 내가 모든 안무, 혹은 대부분의 안무를 틀렸다면 왜 저렇게 못 했냐며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두 가지의 작은 실수는 내가 했던 노력을 없던 것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내가 했던 노력으로 작은 실수 정도는 가릴 수 있었다. 




안무를 외워 단체공연을 몇 번 해봤지만, 그중에서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공연을 손에 꼽을 정도다. 처음에 공연에서 실수했을 때는 그 실수가 공연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실수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는 실수가 무서워 공연하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 그때의 실수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내 실수는 나만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영상에 뻔히 보이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실수보다 잘하고 멋진 장면을 기억한다. 만약 누군가의 실수를 기억했다면 그건 오히려 그 실수가 멋진 장면이라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한 번씩 나에게 주문을 외운다. 실수해도 괜찮아.  




JT Swing Teams - Varsity - Budafest 2023 

(유튜브에 업로드 된 영상에는 앞서 실수한 부분이 편집되었다)



개인 소장용(풀버전) 


이전 15화 환호성 대신 쿠션을 던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