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러 간 유럽
부다페스트 이벤트에는, 다른 곳과는 다른 특별한 룰이 있다. 대회에서 한 커플씩 나와 춤을 선보일 때, 인상적인 부분이나 전체적으로 감탄하며 봤던 춤에는 일반적으로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내는데, 부다페스트에서는 쿠션을 던진다. 행사장에서 미리 준비한 것으로 부다페스트라는 이벤트 명이 쓰인 쿠션이다.
원래는 모든 대회 중에서도 본선에서 한 커플씩 추는 경우, 잘 추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이 주최 측의 의도였다. 하지만 쿠션이 예쁘기도 하고 기념으로 가지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다들 쿠션을 던지지 않고 챙기는 것이 문제가 됐다.
결국 보다 못한 진행자가 부다페스트의 멋진 문화를 위해 쿠션을 사용해 달라며 읍소해야 했다. 쿠션을 던지길 바라며 이백여 개의 쿠션을 준비했는데 전날 나눠준 백여 개의 쿠션은 이미 사람들이 방으로 가져간 지 오래였다. 쿠션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진행자가 공수표를 던졌다. 쿠션을 던지면 가급적 던진 곳으로 다시 돌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쿠션을 가져올 시간을 주고서야 하나둘 쿠션을 챙겨 왔다. 그 뒤로는 잘 추는 커플에게 한둘씩 쿠션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날아드는 베개를 보니 베개 싸움이 연상되어 파자마 파티에 참여한 듯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만 계속 던져서 모두가 쿠션을 던지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진행자가 심은 바람잡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진행자도 같은 사람에게 쿠션을 돌려주는 걸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고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는 진행자가 쿠션을 발로 차서 돌려주거나 다른 곳으로 던지는 척하며 일부러 그러냐며 짜증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비공식적인 바람잡이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점차 쿠션을 던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차례로 인비테이셔널 잭앤질(Invitational J&J)이 진행될 즈음에는 감탄할 만한 춤에는 모두가 쿠션을 던졌다. 바닥에 앉아서 무릎이나 엉덩이 아래에 깔고 앉아있던 사람들도 꼼지락대며 쿠션을 빼서 던지는 모습이 마치 ‘귀찮지만 이 정도 춤이면 인정할 만하지’라고 하는 듯했다.
춤을 추고 나서 쿠션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쿠션을 다시 돌려줬지만, 너무 많이 던져진 탓에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니 대충 던졌고, 가끔은 들고 가기도 했다. 춤을 추는 사람 중에는 다음 커플의 춤을 보고 감탄하며 챙겨둔 쿠션을 던지거나 무대가 끝나고 그대로 들고 가기도 했다.
처음 진행자의 약속과는 달리 워낙 많은 쿠션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덕분에 마지막 곡 직전에는 내 손에도 쿠션이 하나 들어왔다. 꼭 던져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쿠션을 손에 넣으니 갖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 던져야 할지 가져야 할지 갈등이 생겼다. 마지막 곡은 모든 커플이 함께 춤을 춰서 쿠션을 어디에 던져야 할지도 애매하다는 생각에 쿠션을 던지지 못했다.
처음에 사람들이 쿠션을 던지지 않고 숨기거나 갖는 걸 보고,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문화가 사라지는 거라고 비난했다. 영상으로 보던 쿠션 던지기를 볼 수 없어서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쿠션이 손에 들어오니 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됐다.
감탄하고 응원하는 마음과 쿠션을 갖고 싶다는 욕심. 어느 쪽이 더 큰 마음이냐에 따라 쿠션의 위치가 달라진다. 초중반쯤까지는 쿠션을 던져도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약속을 믿었지만, 뒤로 갈수록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보고 믿음을 잃었다. 손에 들어온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응원으로 돌려주고 나면 다시 행운이 돌아오지 않을까 던지지 않고 쥐고 있던 것이다.
쿠션은 조금의 편안함과 기념품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불편한 자세로 오랫동안 바닥에 앉아 무대를 보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기 위해 쿠션을 사용하고, 이벤트가 좋아서 뭐라도 기념하기 위해 가지려는 사람도 있다. 쿠션이 환호성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만큼 응원의 역할을 조금 더 강조했던 진행자의 방법도 괜찮았지만, 쿠션이 더 많았다면 쿠션의 가치가 낮아져서 욕심을 내려놓기가 더 쉬워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