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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인철 Jul 23. 2022

무소유로부터의 자유

풍란을 키우며 법정의 글을 떠 올리다

아침 출근 길에 비가 오니 마음이 급해졌다. 이번 여름은 비 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서 사무실에서 키우던 풍란을 비 목욕 한 번 시키지 못한 탓이다. 비를 맞은 풍란과 사무실에서 수도물만 받아먹은 풍란은 차이가 얼마나 크던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면 풍란이 방긋방긋 웃는 듯했다. 비도 햇빛도 여름에 충분이 쐐야 겨울을 건강하기 지낼 수 있는데 이번 여름은 폭염은 계속되고 비는 오지 않고, 거기다 공사다망하여 햇빛을 쐬어 주는 것도 올 해는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몇 일은 비와 햇빛이 반복되는 제대로 된 가을 장마이니 풍란을 밖에 내 놓았으면 좋았겠건만, 그 기간에도 이런 저런 일로 사무실에 가질 못했다. 드디어 오늘 사무실에 가는데 도착해서 풍란을 내놓으니 비는 그치고 파란 하늘이 구름사이로 보이는데 속이 조금 상했다.


어쨌든 비가 다시 오길 기대하며 풍란을 밖으로 내 놓으니 20대 젊을 때 감명 깊게 읽었던 법정스님의 무소유(無所有)가 생각났다. 다시 읽어 보니 소중히 키우던 난초를 내 놓고 밖에 나갔다가 햇빛에 마르고 늘어질 난초 생각에 허둥지둥 돌아오고, 소유라는 번뇌에 대해서, 유정(有情)에 대해서 불자로서 깨달음을 담담히 써 놓은 멋진 글이다. 친구에게 난초를 안겨주고 서운함 보다는 홀가분함을 느끼고 무소유의 의미를 터득했다고 한다. 


젊었을 때 그 글을 읽고 받았던 감동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가난한 나의 가족과 그런 현실에 힘들어하던 마음이 많이 위로를 받았다. 이제 50대 후반이 되어 지난 30여년간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승진과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자리 보다는 고민하고 땀 흘리고 또 고생한 만큼 정당하게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더 좋아했다. 어렵고 성과를 내기가 힘든 일이라도 누군가가 도전해야 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열심히 했다. 내가 그런 자세를 갖게 된 데에는 무소유의 교훈이 조금은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소유의 교훈이 나를 지켜주었고 욕심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무소유의 자유와 홀가분함 보다는 소유를 통한 재미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법정의 글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 그 때의 감동이 물론 또 한 번 새롭다. 특히 소유에서 무소유로 넘어갈 때의 홀가분함이 꽤 감동적이다. 물론 무소유를 통한 자유로움도 얘기하고 있지만, 자유 그 넘어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가지는 건 가치 중립적이다. 내가 그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무소유, 소유를 두고 생각하기 보다는 사용에 집중하자. ‘가진 것은 몽땅 쓰자’ 라는 선동적 주장을 하는 글을 본적도 있지만, 우리가 경제 생활을 하는 건 소유하기 보다는 사용하기 위함이다. 번뇌를 없애고 해탈하는 것도 좋지만 속세를 사는 범인(凡人)이라면 재미를 느끼고 인생을 사는 것도 좋다. 나를 찾는 방법은 나의 모든 것을 없애는 것과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양 극단에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기 보다는 일 하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강원도 시골 친척 집에 내려갔다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는 조카를 태우고 새벽에 서울로 돌아오면서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진로를 고민하는 조카에게 잘 할 수 있는 일로 돈을 벌고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하는 게 대부분 정답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무책임하게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하는 게 무엇인지 물었다. 50년을 넘게 인생을 살았지만 아직 내게도 어려운 질문을. 운이 좋게도 나는 경제적으로 자립이 되었지만 젊은 날의 나도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얼마나 애 태우고 고민했는지 돌아본다.


법정은 소유욕이라는 중력을 벗어나 우주를 자유롭게 유영(遊泳)하는 수도승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열심히 살았고, 이제 살만큼 됐는데도 아직도 돈벌이 말고는 취미가 없는 사람들을 보면 무중력 공간에서 소유욕의 관성에 내동댕이쳐진 우주 미아가 생각 난다. 이젠 방향을 바꾸어 경제적 자립을 어딘가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좋을 때다. 어린 왕자가 사는 작은 행성을 목적지로 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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