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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인철 Aug 14. 2022

에리히 프롬과 오해를 풀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해 면접을 갔는데 집단면접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질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것이었다. 면접관과 피면접자는 모두 남자였는데, 피면접자 다섯 명중 세명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답했다. 나는 에리히 프롬이라고 했다. 현대 사회는 이런저런 문제가 많은데 그 문제를 인간성 회복으로 해결하려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에리히 프롬 책은 4학년 2학기에 쉽게 학점을 때우기 위한 과목으로 인기가 높았던 영어강독에서 사용했던 'To Have or to Be'를 강의시간에 접한 게 전부였는데도 (그 책도 다 읽은 것도 아니고 한 70 페이지쯤까지 수업시간에 강독한 것으로 끝낸 상태에서). 그래도 그 책에 대한 인상이 좋았거나 그 내용을 설명했던 교수님의 강의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대학시절 강의시간에 교수님들께서 자주 인용하였던 현대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그의 지적이 마음에 남아 있었거나.


추가적인 질문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데모를 많이 했느냐고.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한 사람들에게는 추가 질문이 없었다. 1980년대의 역동의 시간을 대학에서 보냈지만 그렇게 데모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한국 사회가 정치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는 있지만 공부해서 나도 잘 살고 나라도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쪽이 더 강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물론 아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생뚱맞은 대답이고, 회사에 입사하려는 사람이 맞나 싶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소비사회의 문제점을 맹렬히 공격하신 분인데. 그분을 제대로 알았다면, 그리고 회사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면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 무식하면 용감하다. 다행히 다른 회사에 취업을 해서 인생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내가 에리히 프롬을 진짜로 존경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특별히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 에리히 프롬은 비현실적인 대안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분으로 잠재의식에 남았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는 에리히 프롬의 책은 어느 수필가가 인용한 문장이 마음에 찾아와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 같은 그분의 유명한 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지만 독서클럽에 가입하고 에리히 프롬에 다시 도전해 봤다. 이 책은 그분의 강연과 학술지/ 잡지에 발표되었던 아홉 편의 글을 라이너 풍크라는 분이 편집한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에리히 프롬에 대한 불만이 계속됐다. 현대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제를 제시한 부분은 매우 동의하지만,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문제만 나열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회의가 들었다. 30년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 배운 것이 순수과학보다는 응용과학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고,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대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So What?'. 늘 이렇게 묻고 살았다. '문제점은 간략하게, 대책은 아주 아주 구체적으로' 이렇게 요구했다. 보고서를 가지고 오는 직원들이 앞부분에 나오는 현상과 문제점을 설명할 때 혼자 뒷 페이지를 넘겨보지 않았던가. 대책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했을 뿐이며,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X'의 관점에서 보면 한마디를 더 추가해야 한다. 그렇다.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철학은 물론이고 세상의 변화도 넘어서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스스로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자기 행동의 효과적 동기가 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는 뜻이다.(중략) 지금껏 이데올로기적으로만 인정했던 가치가 자기 인성과 행동의 강제적 동기가 될 정도로, 깊이 있는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슨 의미인가?" '비X인간'은 이 질문을 보지 못한다. (중략) 답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니라 총체적 인성의 답이다.


* 위에서 'X'는 '정신적', '종교적'에 가깝지만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저자 개인적으로 특별한 역사적 내용을 없는 상징으로 'X'를 선택 


에리히 프롬이 대책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문제가 가득하고 그래서 인간의 삶은 병들어 있다.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은 사회를 바꾸는 방법과 인간의 삶을 바꾸는 방법이 있고, 에리히 프롬을 후자를 택했다. 정치가들, 그리고 많은 사회단체가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명확히 보고 있다. 우리의 삶과 문제, 그리고 아픔은 각기 다르다.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회복시켜줄 해결책은 우리 개개인이 갖고 있고, 그에 대한 답은 각자 찾아야 한다. 누가 가르쳐주면 그것은 우리의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내년이면 만 60세가 되고 현재는 만 60세가 되면 진짜 은퇴를 하겠다고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할 기회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도 한다. 적당한 수입과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역량을 충분히 활용할 일이나 자리가 아니라면 조용히 접을 생각이다. 일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내적 강제일 수도 있다. 자기를 찾는 노력을 회피하기 위해 분주하게 (Busy 하게) 사는 것이 Business의 원형이라고 프롬이 말하지 않았던가. 좀 더 자유롭게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모든 가능성을 실제로 표현해 보고자 한다. 


은퇴 이후의 삶의 태도도 바꾸고자 한다. 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을 목표로 일했고 그것을 측정하는 것이 돈 이어서 결국 돈이 되는 것은 모두 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틀린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사회의 시스템이 그러니까, 가정을 꾸리고 먹고는 살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조직이 시키는 대로 일할 때도 있었다. 이젠 돈보다는 정말 사회에 유익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힘들더라도 대책보다는 원인을 찾는다. 응용과학에서 순수과학, 인문과학 추구로 전환한다. 규범보다 진리와 원리를 탐색한다. 이렇게 해야 틀릴 가능성이 적다. 대책에 집중하면 수단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로서 인간은 대체 무엇인가? 무슨 의미인가?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그것이 나를 탐구하는 것이고 나를 온전하게 하는 것일 수 있겠다. 세상에 나와서 죽기 전에 창의적으로 살아보는 것이고 존재로서 살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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