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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인철 Dec 10. 2023

 우리는 얼마만큼의 위로가 필요한가?

우리 모두는 위로가 필요하다는 명제에 대해서

삶이 쉽고 편하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도 많다. 처음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고 공감해 주면 울컥하기도 하고 굳어진 마음이 풀리기도 한다. 우리 모든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알고 보면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 위로가 너무 넘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따뜻하고 공감 어린 말과 시선으로만 위로받는 것이 아니다. 여행으로도 위로받고 노래로도 위로받는다. 시로, 철학으로, 풍경으로, 그림으로.... 세상의 모든 것으로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정말 우리는 얼마만큼의 위로가 필요한 걸까? 어떤 위로가 필요한 걸까? 


내가 보기엔 감사가 넘칠 만한 일인데도 힘들어하고 상심해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그런 사람의 하소연을 듣고 있으면 공감하기도 되고 위로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건 뭐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최근에 그런 어색한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 남들은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가진 친구가 힘들다고 투덜대는데 내가 보기엔 자랑이었다. 자랑하는데 웬 위로? 그런데 같이 있던 다른 친구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지 비슷한 맥락의 자랑거리를 위로거리로 각색하여 늘어놓는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만남의 자리가 싫어졌다. 정작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말도 못 하고 속으로 참으면서 마음으로 감사를 새기고 있는데. 


몇 년 전 아버님 상을 마치고 조문한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보냈는데 직장 상사가 답장을 보내주었다. '수고 많이 하셨어요. 힘내세요.' 평범한 그 문자에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집에 있는데 정말로 온몸에 힘이 쑥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었었다. 그런데 그 문자 하나에 힘이 났다. 이제 회사에 나가야 되는데, 사람들도 만나고 일도 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힘을 내기가 어려웠었다. 그런데 그 문자를 받고 나서 풀려 있던 손에 힘이 쥐어졌다. 피가 다시 도는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하면 된다'라고 하는 말이 유행하는 시절이었고 힘들다고 하면 '너만 힘드냐'라는 핀잔만 들을 것만 같았다. 다들 인상 쓰고 힘들어하면서도 힘들다고는 안 했다. 남을 살펴볼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렇지만 조금 숨을 돌리면 진한 동료애가 느껴지기는 했다. 요즘은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도 잘하고 위로를 주고받는 것도 잘하는 것 같다. 예전보다 살기가 더 힘들어지기도 했지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더 관대해진 것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변화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위로가 너무 흔하고 넘치는 세상이니 위로를 하지 말아야 하나? 그래도 위로하자. 열심히 도전하고 힘들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스스로 위로하자. 자주 위로받고 싶은가? 작은 일에도 공감해 주고 위로를 주고받으면 좋기는 하다. 그래도 너무 헤프면 곤란하다. 작은 일에도 적당히 타협해서 살아가게 유도할 수도 있다. 기진맥진해서 일어설 힘이 없을 때가 진짜로 위로 필요한 시간이다. 그럼 누가 그런 상황을 알고 Timely 하게 위로를 줄까?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지나가는 구름으로도 위로가 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등등 모든 것이 위로가 된다. 가족은 같이 만 있어도 생각만 해도 위로가 된다. 그럴 때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해진다면 정말 좋겠다. 나도 그렇게 위로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따뜻한 위로 한 스푼을 더하고 싶다. 언제 어디서나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가 전달될 수 있도록. 말과 행동으로. 존재하는 그 자체이면 더 좋겠다. 우리 모두에겐 위로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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