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크리스마스는 진짜 화이트 합니다
흰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아침 풍경이 새롭다. 멀리 산과 나무들이 하얀 옷을 입고 산뜻하게 서있다. 들판에도 지붕 위에도 소복이 눈이 쌓인다. 어제까지 단조롭고 익숙한 모습이 순식간에 새로워졌다. 저 눈이 녹으면 다시 어제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푸근하다. 이렇게 산뜻한 순간을 즐기면 된다. 아름다운 것이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야생은 거칠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들은 끈질기다. 좁은 돌틈을 비집고 얼굴을 내밀고 뿌리를 내리는 꽃들을 보면 경이롭기도 하지만 조금 안쓰럽다. 좀 더 좋은 곳에 자리 잡고 꽃을 피우면 좋았으련만. 그래도 떨어진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다하니 대단하다.
정원에서 꽃을 키우다 보면 아무렇게나 키워도 잘 자라고 남의 자리까지 침범하는 놈들도 있고, 정성껏 보살피고 가꾸어야만 겨우 살아남는 놈들이 있다. 정성껏 보살 핀다고 그 꽃이 그만큼 예쁜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끈질긴 생명을 가지고 지독하게 피는 야생화를 더 좋아한다. 그래도 그 놈들이 빈약한 생명력을 가진 놈들의 자리까지 침범하면 미워진다. 가만 놔두어야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인가? 보살펴 주어야만 살아남는 것들은 어찌할 것인가?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어리석은 몸짓이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순수함이다. 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 같은 마음이다. 더 많은 손길이 가더라도 살려내고 싶은 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황홀한 감정은 순간이고 현실은 구차하고 힘든다. 그래도 그 구차한 시간을 견디고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사랑한 순간과 아름다웠던 시간들의 기억들이다. 눈에 덮인 현실이 드러나면 또다시 시작되는 일상은 심드렁하지만 다시 눈이 오길 기대하며 포근하게 살기로 한다. 보살펴 주고 마음에 담아두어야만 하는 것들은 그런 순간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