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그 작가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가 끝났다.
드라마가 끝난 다음 마음에 남은 대사들이 흐릿하게 떠올라 대본집을 구하고 싶었다.
“작가가 누구야? 임상춘? “
남자 이름인지 여자 이름인지 가늠이 안 되는 이름에 작가가 더 궁금해졌다 임상춘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는데 재밌게 봤던 쌈, 마이웨이가 있었다 꽂히는 드라마가 일 년에 2~4편이 전부인 내게 임상춘 작가가 쓴 드라마 두 편은 참 인상이 깊게 남았다. 그 드라마에서 느껴진 임상춘 작가는 마음이 따뜻하고 사람이 소중한 걸 아는 이 같았다.
동백꽃 필 무렵 마지막 장면에서 임상춘 작가는 시청자에게 한 문구를 편지로 썼다.
“이 세상에서 제일 세고 제일 강하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한 인생의 그 숱하고도 얄궂은 고비들을 넘어
매일 나의 기적을 쓰고 있는 장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제는 당신 꽃 필 무렵.”
이제는 당신 꽃 필 무렵.
저마다의 꽃을 알아볼 줄 아는 이.
누군가가 꽃을 짓밟으면 화내며 저항해줄 이.
함께 꽃을 피우게 도와주는 이.
상처를 보듬어 주는 이.
씨가 자라 새싹이 되고 꽃을 피우는 것을 아는 이.
그게 내가 느낀 동백꽃의 작가 임상춘 같다.
임상춘 작가의 몇 개 없는 인터뷰를 보면 작가의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1. 필명
성별도 나이도 없는 작가가 되고 싶다.
왜 그럴까? 모두가 자기 PR이라고 자기를 못 드러내서 안달인데 임상춘 작가는 자기 이름도 성별도 나이도 모르게 필명을 썼다. “저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드라마로 만들어 제공하는 전달자나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작가로서 나는 지우고 싶어요. 다음에는 다른 이름으로 써볼까도 생각해요.” 김은숙 작가처럼 자기 작품 고유의 특징을 담을 수도 있는데 오히려 자기를 지우고 그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한다.
2. 처음부터 드라마 작가를 꿈꾸지 않았다.
드라마 작가는 젊을 때에 선배 작가 밑에서 작가를 꿈꾸며 일하면서 되는 줄로 알았다 뒤늦게 드라마 작가로 입문한 케이스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텃세가 있는 방송계에서 힘들고 드문 경우이다 그런데 임상춘 작가는 작가를 꿈꾸지 않고 직장을 다니다가 20대 후반부터 작가를 꿈꿨다.
이제 서른이 코앞이라 20대 후반 드라마 작가라는 기존에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한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 기존의 길과 다르게 이제 와서 자리를 잡아가는데 참 쉽지 않은 걸음인데 단지 꿈꾼 거에 그친 게 아니라 문화방송 공모전에 두 편이 최종 심사까지 갔다 공모 당시 대본 쓰는 방식조차 임상춘 작가는 몰랐다. 어떻게 보면 그게 그 대본의 매력으로 느껴지지 안 않을까.
3. 현실 공감
많은 드라마를 지나가며 보면 참 공감도 안 되고 재미도 감동도 무슨 얘기인지도 몰라서 채널을 돌렸다. 이야기가 전후 관계없이 막장이 되고 화려한 연출이 아까울 정도로 이야기 전개가 이상하게 흘러간 경우도 종종 본다. 임상춘 작가 드라마는 너무 현실적이라 내 얘기 같아 기쁘다가도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작가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나도 그래 그러면서 따뜻하게 내 모습을 인정해준다.
4. 모두 살아있는 캐릭터
주연, 조연 구분 없이 모든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 스쳐 지나가는 역할은 없고 모두 잘 연결되어 있다 너무 잘 짜인 스웨터처럼, 딱 맞춰진 퍼즐 조각처럼 드라마에 나온 캐릭터들이 묻히지 않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그 자리매김을 톡톡히 한다.
그래서 초특급 뛰어난 주연이 끌고 가는 드라마보다 모두 하나 되어 드라마를 살려준다 동백꽃 필 무렵에 동백이 엄마가 수술하러 병원에 가던 길은 아주 각자 캐릭터가 자기들의 존재를 똑똑히 보여주며 모두가 힘을 갖는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나 또한 그런 누군가의 살아있는 캐릭터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임상춘 작가. 다음 작품은 뭘까.
대본집은 안 낼까.
계속되는 동백이의 다시 보기를 보면 볼수록 작가가 남긴 자리에 깊은 여운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