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이 고작 9000원

by 김예지

날씨가 좋은 날이면, 난 꼭 와인을 한 병 산다.

내가 말하는 좋은 날씨는 꽤나 디테일하다 바람은 정말로 얇디얇은 휴지도 날아갈 듯 말 듯 정도의 얕은 사랑거림. 기온 자체는 꽤 차워, 강한 햇살에 따듯하게 유지되는 그런 날. 그런 날이면 매일 보던 풍경도 유난히 춤추고 노래하는 것만 같다. 어떤 노래를 틀어도 이상하리만큼 다 어울리는 그런 날..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자세한 것들이 너무도 선명히 잘 보인다. 내 시력이 한 층 좋아진 것같이 느껴진다. 작은 모든 것에 집중시킨다. 나무에 나뭇잎들이 정말로 흥얼대 이 좋은 날에 ‘야호!‘ 하듯이. 사람도 기분 좋은 날이면 그 흥을 주체하지 못해 가만히 있어도 몸은 자동적으로 흥얼대는 리듬 따라가듯 그렇다. 나비도 참 솔직하다. 우중충하고 흐린 날엔 나비를 본 적이 한번 없는데, 내가 와인을 사는 날이면 새하얀 나비들이 보란 듯이 날갯짓을 뽐낸다. 정말 이쁘다 이 모든 것들이. 짜여져있던 시나리오처럼 흘러간다. 한 때 모든 것은 내 선택과 생각으로 결정이 되고 어떤 일이든 일어난다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실은, 이 모든 것이 흐름 따라 빛났다가도 어두워지고를 반복하기에 나도 살아간다. 그저 그런 날, 속상했던 날도 있어야 좋은 날을 좋다 말할 수 있으니. 모든 것에 감사한 거다. 그렇게 난 또 날이 좋으면 9불짜리 와인을 사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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