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

추상적인 단어 ‘행복‘

by 김예지


‘행복’ 이란 단어가 참 추상적이라 생각이 든다.

사람 개개인마다 행복을 느끼는 기준도 다를뿐더러,

누군가가 “행복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

어느 누구도 그 ‘행복‘ 이란 감정에 대하여 “어떤, 어떠한 걸 해봐”라고 정확한 해결 방법을 줄 수 없으니.

실제로 사람들이 나한테 삶의 목표나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너무 추상적이라고 했었고.


행복은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그 행복함의 정도가 얼마나 커야 내가 진정 ‘행복하다 ‘라고 느낄 수 있는지.


남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거창한 행복의 기준에 꼭 맞출 필요 없다. 막대한 부, 명예적으로 성공한 삶, 자유로운 여행 등.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면 어떤가.

나는 말할 수 있다.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너무 사고 싶었던 옷이 있었다고 하자. 돈을 모아 서든, 내가 성공하면 사고 싶은 첫 번째 보상이었든. 사고 난 직후에는 행복하다 느낄 수 있다. ‘드디어 이걸 샀다!’, ’너무 예쁘다. 언제 입지’처럼 새로운 것에서 오는 만족감, 기쁨?이라고 하자.

그게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새로워 보이고 보기만 해도 행복할까? 결국에는 새로움에서 오는 만족감을 다시 채우기 위해 다른 새로운 것을 찾지 않겠는가.


행복은 본질적인 것이다. 사랑도 같다.

얼마나 나다워질 수 있느냐의 문제다.

내가 어떤 것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행복을 느꼈는지 되돌아본다면 깨달을 수 있다.


나는 보슬보슬 비 오는 날에 빗소리를 들으며 따듯한 차나 커피를 마실 때 행복을 느낀다.

맛있는 음식 그 후에 먹는 달달한 디저트,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과 오가는 대화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각기 다른 푸른 나무들,

잠시 멈추고 노래의 가사에 집중하는 순간들이나 따듯한 오후 햇살을 느낄 때.


내가 신나게 집중력을 쏟으며 할 수 있는

무언가 들이 모여 내가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는지,

나만의 ‘행복‘에 대한 정의가 내려진다.


그런 순간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첫째로 다양한 것들을 도전해 보고, 시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들 대한민국의 사회적인 분위기 따라 쉼 없이 달리기만 한다면 주위에 있던 행복들도 지나칠 수 있다.

둘째, ‘감사일기‘처럼 ‘행복일기’를 적어보면 어떤가.

하루 동안 내가 조금이라도 기분 좋았던 순간들을 적고, 왜 그렇게 느꼈을까 생각해 보며 글로 남기다 보면 그런 순간들에서 공통점이 보일 것이다. 내가 어떤 특정 부분에서 행복을 느끼는구나. 그 본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셋째, 무엇이든 당연한 것은 없다. 사소한 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감사한 일들이 많다.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것도 내가 ‘행복한 사람이구나 ‘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넷째, 혼자 있을 때 원초적인 행복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 땐 즐겁고 행복하다 느낀다. 그것에서만 행복을 느낀다면, 사람들만 주구장창 만날 것인가?

그 사람들과 못 만나는 상황이라면? 나에겐 행복이란 없는 것일까? 그래서 혼자 있어봐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유대감과 즐거움을 제쳐두고도 어떤 다른 방면에서도 내가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


이렇게 숨어있던 행복한 순간들을 찾다 보면, 나중에 어떤 힘든 감정이 찾아와도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꺼내어하다 보면, 잠깐 찾아온 힘듦의 감정이 별게 아니구나 느끼는 순간이 온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사람은

자주, 쉽게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