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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by 있는그대로

책장에 오래도록 꽂혀 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몇 해를 보냈다. 드디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책을 펼쳤는데, 작은 글씨와 첫 문장부터 등장하는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이 나를 압도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무겁다니. 게다가 484쪽에 달하는 분량은 산처럼 느껴졌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에서 태어나 프라하의 봄과 소련의 침공을 겪었고, 이후 프랑스로 이주한 작가다. 그의 삶이 이미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를 넘나들었기에, 작품 전체에 체코의 역사와 개인의 운명이 뒤섞인 질감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소설은 일인칭이면서도 전지적 시점을 넘나들고, 직선적 서사가 아닌 반복적이고 변주적인 방식으로 흐른다.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분법조차 완전히 무너뜨리며 인간의 욕망, 아픔, 선택의 한계를 들여다본다. 한 번 읽어서는 모두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이번에는 인물 중심으로 천천히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이야기는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네 사람을 중심으로 사랑과 정치, 이데올로기의 결을 풀어낸다.

토마시는 저명한 외과의사다. 그는 살아가는 모든 것을 ‘가벼움’으로 받아들이고 육체적 자유를 자연스럽게 누리며 산다. 그러나 유독 테레자 앞에서는 무게를 느낀다. 그 무게가 사랑인지, 책임인지, 혹은 운명의 장난인지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는 테레자를 떠나지 못한다. 신문에 쓴 글을 수정하기를 거부하다가 외과의사에서 창문 닦이로 전락하는 그의 모습은, 가벼움을 추구하던 삶에 역설적 무게가 더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테레자는 토마시를 깊이 사랑한다. 그녀는 삶을 늘 어떤 ‘무게’로 받아들이며 살아왔고, 토마시와의 여섯 번의 우연을 모두 운명으로 해석한다. 그녀의 무거움은 사랑과 상처, 자의식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민감함에서 비롯된다. 삶이 자신에게 과하게 요구할 때조차 묵묵히 받아들이며 무게를 짊어진다.


사비나는 예술가이자 끝없는 배반을 통해 자유를 증명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가벼움’은 제도나 의미, 규범을 거부하며 스스로를 해방하는 방식이다. 도망침으로써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 그러나 그 가벼움 또한 고독이라는 무게를 동반한다.


프란츠는 대학 교수로 이상주의적이다. 사비나의 가벼움을 오히려 ‘무거움’으로 받아들이며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행진에 참여하다가 뜻밖의 죽음을 맞는다. 그 어이없고 허망한 죽음은, 무거움과 가벼움 어느 쪽도 완전히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래야만 한다”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무겁게 만들어 왔는지 돌아보았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사비나 같은 가벼움, 바람처럼 흘러가는 삶의 속도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무거움을 천천히 벗고, 날마다 봄날처럼 가볍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소설 속 ‘키치’라는 단어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자기 삶의 어둠을 보지 않으려는 태도, 모두가 좋아할 만한 감정만을 선택하고 꾸며낸 세계., sns 유트브 미디어를 떠올리게 했다.

스탈린의 아들이 “신의 아들이 똥을 보러 가다가 고압선에 부딪혀 죽었다”는 일화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뒤틀림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적 비극조차 우스꽝스러움으로 변하는 인간 존재의 모순이 담겨 있다.


특히 가슴에 오래 남은 장면이 있다. 4부 ‘영혼과 육체’ 13장에서, 테레자가 낯선 남자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아니에요, 이건 내 뜻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대목. 그 사내는 “당신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우린 할 수 없습니다. 그럴 권리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 순간 테레자는 깨닫는다. 자신은 늘 타인의 시선과 요구를 운명이라 믿고 살아왔다는 것을. 그러나 “아니에요. 내 뜻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운명도, 타인도 나를 강제할 수 없다. 그 깨달음 이후, 테레자는 처음으로 자신을 주체로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 또한 그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내 삶의 방향을 누가 정하는가? 결국, 나다.


책에서는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말하며 네 부류의 인물을 설명한다.첫 번째는 익명의 대중의 시선을 먹고 사는 사람들, 가수와 배우 같은 존재들.두 번째는 다수의 친한 지인들의 시선 없이는 불안해 일상적으로 만남과 파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세 번째는 사랑하는 한 사람의 시선 속에서만 자신을 확인하는 유형.네 번째는 부재한 타인의 상상적 시선—프란츠처럼 어떤 관념적 존재를 기준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결국 타인의 시선은 우리를 제한하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책을 덮으며 문득 생각했다. ‘프라하의 봄’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고. 소설은 그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의 나에게까지 도달해,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살아갈 것인지 묻는다. 나는 이제 조금 더 가볍게, 그러나 나의 뜻을 잃지 않는 무게를 품고 살아가고 싶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결국 무게와 가벼움 어느 쪽도 절대적인 해답이 아님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내 삶을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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