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픈 사랑
<이선 프롬>을 읽고 난 뒤, 마음속에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용기 없음이 남긴 잔혹한 결과였다.
이선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책임감 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인물이다.
부모를 떠맡았고, 병약한 아내를 버리지 않았으며, 가난 속에서도 도덕적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문제는 그 모든 ‘옳음’이 결국 그의 삶을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는 사랑을 원했지만 선택하지 못했고, 떠나고 싶었지만 떠나지 않았다. 그의 비극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음의 연속이었다. 옳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함에 있다. 매티는 이선에게 삶의 온기였다. 눈 덮인 스탁필드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따뜻한 색을 지닌 존재였다. 매티와 함께 있는 순간, 이선의 삶은 잠시나마 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온기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선은 가난을 이유로, 책임을 이유로, 그리고 아내를 버릴 수 없다는 의무를 이유로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사랑은 마음속에만 남았고, 현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래서 마지막 선택, 자살 시도는 도피이자 비틀린 용기처럼 보인다. 살아서 선택하지 못한 것을 죽음으로 대신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마저 실패한다. 이선은 불구가 되고, 매티는 삶의 생기를 완전히 잃는다. 그리고 가장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세 사람은 평생 한집에서 함께 살아간다. 죽음보다 더 비참한 삶, 끝나지 않는 벌 같은 일상이 시작된다.
이 결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것이 극단적인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이선’으로 살아간다. 해야 한다는 말, 책임이라는 이름, 남에게 피해 주면 안 된다는 도덕 아래에서 자신의 삶을 조금씩 미루며 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은 이미 굳어 있고 선택의 순간은 지나가 버린다.
이 소설을 덮으며 나는 다짐하게 된다. 책임과 의무가 삶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조금 더 가볍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모든 책임을 끝까지 짊어지는 것이 반드시 선은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한 사람의 용기가 여러 사람의 삶을 구할 수도 있으니까.
<이선 프롬>은 너무 아픈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보다 더 아픈 것은 자기 삶을 살지 못한 한 인간의 초상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슬프면서도, 나를 향한 질문으로 오래 남는다.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선택하고 있는가. 옮음에 윤리에 갇혀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또 하나의 겨울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