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풀리고 나서는 되도록 매일 유모차를 끌고 산책에 나선다. 평일에 아기와 동네 이곳 저곳을 다니다보면 소소한 재미가 많다. 이런 시간도 복직하면 없어질거라 생각하니 한 번이라도 더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초등학교를 품고 있는 이 동네에는 아이들이 많다. 오후 2시쯤 나가면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초등학생 아이들로, 오후 4시쯤에는 학원에 다녀온 초등학생들과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서 돌아온 영유아들로 거리가 늘 북적인다. 어린이들은 하원 후 대부분 놀이터로 직행하지만 초등학생만 되도 놀이터로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거나, 문방구(학교에서 수업 준비물을 다 제공하는 시대라고 해도 아직 문방구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에 가거나, 학원 버스를 탄다.
한 번은 유모차를 몰고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고 있는데 위에서 6~7살쯤 먹은 듯한 남자 아이가 태권도 복을 입고 신나게 달려내려왔다. 아이의 시선은 언덕 아래에 서 있는 엄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엄마 나 이제 파랑띠!” 신이난 아이는 얇은 패딩 점퍼의 앞 섬을 여미지도 않은 채 바람을 가득 안고 함박 웃음을 지으며 달렸다. 언덕 아래 서 있던 엄마는 “뛰지마 다쳐”하고 외치면서 아이의 키 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양 팔을 활짝 펼쳤다. 달려내려오는 아이를 안아줄 생각에 엄마도 같이 신이 난 표정이다. 나는 이 행복한 모자의 상봉 장면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춰섰다. 오후 4시의 햇살, 아직은 쌀쌀한 초봄의 바람, 달리는 아이의 땀방울과 엄마의 미소. 두 사람이 꼭 껴안으면 너무나도 예쁜 그림이 완성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넓게 펼쳐진 엄마의 품을 쌩하고 외면한채 큰길로 내쳐 뛰어감으로써 엄마와 나의 기대를 시원하게 져버렸다. “엄마! 나 재영이랑 놀고올게!”
초등학생쯤 되면 부모의 포옹을 뿌리치는 것이 일상이다. 또 다른 날은 분식집 앞을 지나는데 손에 컵볶이를 든 초등학교 저학년 소녀 셋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다. “내가 안 졸리다고 했는데 엄마가 10분만 같이 자자고 10분 있다 깨워준다고 했는데 한 시간 있다가 깨워줬다니까! 정말 킹받아”, “나는 절대로 엄마랑 같이 안 자 혼자자는게 편해”… 분리 수면이 꿈인 모든 영유아 엄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굳이 같이 자겠다는 아이를 떼어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아이는 혼자 잔다. 그 때가 되면 같이 자자고 붙어오던 날이 분명 그리워질 것이다. (하지만 분리 수면을 하면 수면의 질이 극적으로 올라가는 것은 정말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분리수면 중인데, 때때로 같이 잘 수 있을 때 끼고 자야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와글와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있는 우리 아기도 곧 저렇게 걷고 뛰고 말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아갈 것이라는게 실감된다. 아이에게 부모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생기는 것은 기대되면서도 걱정되는 일이다. 아이만의 세계가 위험한 곳이 아니도록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겠지만 크면 클수록 내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많아질테다. 힘껏 달려나갔다가도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오고, 따로 자다가도 무서우면 엄마품에 파고들 수 있도록 느슨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