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촉하지 말지어다

모든 아기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니까

by 무나나나

지난 겨울 어느 주말, 나는 첫 수유를 마친 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아기를 놀이 매트 위에 눕혀둔 채 거실을 떠났다. 태어난지 180일쯤 되어가던 아기는 여전히 뒤집기를 할 줄 몰랐다. 빠른 아이들은 100일 무렵이면 금방 제 몸을 뒤집는다던데, 때 되면 하겠지 하며 기다린 게 벌써 2달을 넘고 있었다. 아기는 몸을 비틀어 등을 대고 누운 채 약간 이동할 줄은 알았지만 그래봤자 가로 2미터짜리 매트를 벗어나지 못했다. 혹시 발달이 늦은 걸까 싶어 슬슬 조급해지는 중이었다. 몸은 편했지만. 아기와 단 둘이 있어도 집안일은 물론이고 (짧은) 샤워를 하거나 책을 (몇 페이지) 읽을 수 있었으니…


그 날도 아무 생각 없이 샤워 중이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던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집기 했어!” 약 60일간 이어진 ‘몸은 편하고 마음은 불편한 상태’의 끝을 알리는 외침이었다.


젖은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둘러맨 채 휴대폰을 들고 뛰어나가니 아기가 엎드려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원래 누워있던 곳에서 한 뼘이나 떨어진 위치였다. 아기의 첫 뒤집기를 목격한 남편은 흥분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첫 뒤집기를 본 사람이 아기랑 매일 붙어있는 내가 아닌 남편이라니! 어쩌면 아기가 자신의 모든 ‘처음’을 놓쳐 슬퍼하는 아빠의 마음을 헤아린 게 아닐까 싶어 웃음이 났다.


그날 뒤집기 하나로 잇몸이 마르게 웃은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주말을 맞아 찾아뵌 양가 부모님들은 아기가 엉덩이를 들썩일 때마다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아기의 뒤집기는 처음인데도 안정감이 있었다. 친가에서도 외가에서도 한 번의 실패 없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냥 누워있다가 엎드렸다가 다시 눕는 것을 반복할 뿐인데도 그 몸짓이 위대한 것인 냥 칭찬이 이어졌다. ‘동작이 빠르고 정확하다’느니, ‘엎드리는 것도 귀엽다’느니 하면서.


아기가 첫 뒤집기를 한 주말은 2번째 영유아 검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6개월이 지나며 받게 되는 2차 영유아 검진은 그 맘때 발달 사항을 잘 따르고 있는지, 발육상 문제가 있는 곳은 없는지 짚어보는 내용이다. 다음날 소아과에서 문진표를 받아 든 나는 ‘아기가 혼자 앉아있을 수 있는가’, ‘뒤집을 수 있는가’ 항목에 자신있게 ‘예’를 골랐다.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별 것 아니겠지만 나로서는 가슴에 걸려있던 돌이 쑥 내려간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기를 살펴본 의사는 또래보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아기라 근육이 그 체중을 받쳐줄 만큼 발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면서 “기는 것도 어려워서 안 하려고 할 테니 보행기 같은 것은 최대한 태우지 말라”라고 조언했다. “이런 아기들이 걷는 것도 좀 느려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뒤집기 걱정 다음엔 기기 걱정이라니. 이게 끝나면 또 언제 걷나 걱정해야 하다니. 소아과를 나서니 또 목구멍에 작은 돌멩이가 낀 것 같았다.


나보다 먼저 엄마가 된 친구는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며 “뒤집는 거, 걷는 거 모두 늦으면 늦을수록 좋아”란다. 아기가 움직이게 되면 육아 난이도가 제곱으로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누워있는 아기 돌보는 게 쉽겠니, 뛰어다니는 아기 보는 게 쉽겠니. 그러니 사람들이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해요’ 하는 거지 뭐” 하며 웃던 친구는 “그래도 걷고 뛰고 말하고 크면 클수록 또 재미있고 귀엽더라”며 기대감을 올렸다.


나중에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 모임에 참석해보니 걱정이 없는 엄마는 없었다. 뒤집기를 늦게해서, 옹알이가 너무 적어서, 너무 빨리 이가 나서, 너무 이가 안 나서, 너무 체중이 덜 나가서, 너무 체중이 빨리 늘어서, 너무 응가를 자주 해서, 너무 응가를 안 해서… 걱정의 이유는 수도 없었다. 각자 걱정거리를 털어놓고 위로하던 엄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정도 걱정이면 감지덕지죠” 라면서.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늘 ‘남들은 지금 이런 거 한다던데 왜 우리 애는 못/안 하나’ 하는 마음에 시달릴 것이다. 초연하려고 해도 그게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안다. 모든 아기들이 다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나는 것을. 조급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앞으로 또 수많은 처음들을 마주할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지켜보면 그만일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 소중하고 예쁜 아기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