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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우 Dec 31. 2022

퇴사한 지 1년 3개월 만에 다시 일하게 됐다.

긴 퇴사 생활을 회고하며

경력직 채용에 최종 합격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최종 합격 메일이 새해 선물처럼 도착했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셔츠에 힐을 신고 바들바들 떨면서 면접을 보러 판교에 다녀온 지 2주 만이었다. 처음엔 퇴사하고 첫 번째 지원이라 '떨어져도 또 다른 곳 지원하지 뭐!' 싶은 쿨한 마음이었는데 서류가 붙고, 1차 면접이 붙고, 2차 최종까지 오르면서 꼭 붙고 싶은 간절함이 500배는 커졌다. 


보통 30분 내외로 끝난다던 면접은 쏟아지는 질문과 함께 45분 간 쉴 새 없이 이어졌고,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후에야 끝났다. 마지막에 혹시 원하는 연봉 수준이 있냐는 생각지 못한 질문에 내 무의식이 갈망하던 숫자를 냅다 떤지고 나왔는데, 다행히 합격 시그널이었다.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퇴사한 지 1년 3개월 만에 다시 소속이 생겼다. 잔소리나 재촉은 안 했지만 내심 내가 일을 오래 쉬는 게 마음 쓰였던 엄마는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기쁨의 눈물까지 흘리셨다. 퇴사하고 처음엔 자유를 만끽하며 좋았지만 점차 공백 기간이 길어지며 불안해하던 걸 아는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해줬다. 쉼이 있어야 다시 달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퇴사 생활이었는데 2022년은 여느 때보다 꽉 찬 시간을 보냈다. 

 

1. 좋은 제안을 받아 프리랜서 신분으로 기업의 조직문화를 브랜딩 하는 2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나답게 일하고자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찐한 자극을 받았다. 녹슬었던 중국어 실력을 다시 다듬어 중국 논문 번역 일도 부업으로 하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콘텐츠 협찬금으로 용돈벌이를 하며 진작에 바닥난 퇴직금을 대신했다.


2. 30일간 매일 글쓰기에 도전하며 브런치 작가 되기에 성공했다. 회사 다닐 때도 별로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을 퇴사 후 처음으로 느꼈다. 아직 발행한 글보다 작가의 서랍에 묵혀둔 글이 훨씬 많지만, 일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소중한 창구가 되었다. (앞으로도 퇴사 생활하며 써놨던 글들을 하나씩 발행하고자 한다.)


3.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일하면서 종종 필요했던 포토샵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어서 그래픽 기술 국가 자격증에 도전했다. 생각보다 재밌어서 최근 2년 치 모의고사를 꽤나 즐기며 푼 덕분에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합격했다. 


4.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유기동물에 관심이 많은 10년 차 반려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작은 관심은 반려동물종합관리사 도전으로 이어졌다.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한국애견연맹 주관 시험을 접수하고, 매일밤 수험생 모드로 두꺼운 책 한 권을 독학한 끝에 또 한 번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나다운 게 뭘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며 작은 like들을 love로 키우기 위한 도전들을 했지만, 여전히 가슴속 열정을 불태울만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는 모르겠다. 일해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이번엔 내가 가진 업무적 성향과 강점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기대가 있다. 일하면서 부족한 점은 성장시키고, 즐거움도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전에는 회사 규모나 연봉이나 복지와 같은 비본질적 요소만 고려했다면, 이번에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내 가치관의 교집합이 큰지, 내 업무 스타일과 맞는 일인지 등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중점으로 봤다. 특히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과정은 임원 면접에서도 크게 도움이 됐다. 날카로우면서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나만의 생각으로 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의 나는 퇴사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제는 일이 너무 하고 싶어 졌다는 게 스스로 가장 놀라운 변화이다. (얼마나 갈지는 장담 못 하겠다.) 개인적으론 꾸준한 운동, 책 읽기, 영어 공부, 기록과 같은 매해 반복되는 목표들에 대해 퇴사하고도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지만, 미련 없이 새해의 나에게 다시 새로운 목표로 던져주려 한다. 나처럼 퇴사 후 공백 기간이 길어져서 걱정되고 불안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길 바라며, 모두 원하는 곳에서 나답게 일하는 새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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