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탐구노트 : 린 램지(Lynne Ramsay) 2

린 램지2. <쥐잡이꾼 (Ratcatcher)> (1999) 살펴보기

by LIYU


린 램지의 첫 장편 <쥐잡이꾼>은 내가 고른 세 편의 영화 중 ‘죽음’ 그 자체의 영향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본 영화는 커튼에 얼굴을 휘감으며 장난치는 소년 ‘라이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대게 영화의 주인공들이 처음에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소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운하에서 주인공 ‘제임스’와 놀던 중, 제임스의 장난으로 익사하고 만다. 그러나 라이언의 죽음은, 영화에서 큰 사건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라이언이 창문으로 바라보던, 아주 작게 등장했던 제임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영화는 그의 생활을 따라 보여지는 1970년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더 조망한다.


길거리, 하천 할 것 없이 어디에나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들, 아이들의 머리에 가득한 이, 전염병, 피부병, 더러운 개천, 폭력적인 소년들, 가난한 노동자들이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고 있는 동네에서 라이언의 죽음 커다란 이슈가 아니다. 개천에 누가 빠져 죽었다더라, 너는 개천에 가지 말아라, 라는 말로 끝나고 마는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 그 누구도 라이언의 죽음에 의문을 갖거나 전말을 알려하지 않는다. 그런 동네에서, 제임스는 그 누구에게도 라이언의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된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비밀을 갖게 된 10대 소년의 압박감은, 사건이 일어난 개천을 중심으로, ‘시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쥐잡이꾼>은 <모번켈러의 여행> 이나 <케빈에 대하여> 같이 붉은색, 푸른색 등 강렬한 색채의 사용이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어둠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기존의 의미들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고 있다. 특히 앞서 이야기 한 개천과 쓰레기 봉투, 다리 밑 공간 등 주인공을 비롯한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것들에 이 어둠이 사용되었다. 그 중 개천의 경우, 마가렛의 안경을 찾기 위해 개천을 바라보는 제임스의 백샷에서 마치 제임스를 집어삼킬 듯 짙은 어둠을 가진 공간으로 묘사되었다. 오프닝에서는 혼탁하고 불투명하게 그려졌던 개천이, 라이언의 죽음 이후 완전한 어둠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심지어 라이언과 제임스가 함께 놀 때는 얕게 묘사되던 개천이, 엔딩으로 치닫으며 깊고 어두운 공간으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병균, 벌레 등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 역시 개천을 기피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제임스에게는 친구의 죽음이라는 다른 비밀이 함께 묻혀잇는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라이언의 죽음은 금방 잊혀지는 듯 보인다. 라이언의 죽음 말고도 동네와 제임스, 제임스의 가족들에게는 다른 문제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곳곳에 출몰하는 더러운 쥐들, 해결할 수 없어 쌓여만가는 쓰레기들, 부동산 문제, 피부병, 무능력하지만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빠, 그런 아빠의 과거로 읽히는 소년들까지. 제임스를 둘러싼 환경은, 제임스를 더욱 외로움과 고독으로 몰아넣는 듯 하다. 폭력적인 친구들의 강요로 자신이 짝사랑하던 소녀 마가렛과 함께 소파에 포개져 누워있는 제임스의 모습은 위태로운 스코틀랜드 소년의 전형같다.


제임스는 라이언의 죽음으로 인해 무언가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거나,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지는 않지만, 라이언의 죽음은 제임스의 마음에 작은 상흔을 남겼다. 자신의 집 욕조에서 잠수를 하는 마가렛을 보면서, 죽은 쥐들을 보면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임스는 라이언을 본다. 이러한 장면에서 린 램지는 일상의 한 순간을 클로즈업해 그 의미를 강조하거나 새로이 창출하는 자신만의 문법을 이용한다. 린 램지의 문법이 발현되는 컷들은 제임스의 삶이, 스코틀랜드 노동계급 가정의 한 소년이 아니라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계속 환기시킨다. 제임스의 심리 상태가 반영 된, 린 램지의 컷들은 그렇게 일상을 영화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뿐만 아니라 사운드 면에서도 린 램지는 자신만의 문법을 가지고 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에바가 운전을 할 때마다 들려오는 흥겹고 즐거운 무드의 음악, <모번 켈러의 여행> 속 남자친구의 시체를 토막내는 켈러의 모습 위에 깔리던 신나는 음악처럼, <쥐잡이꾼>에서도 제임스의 엄마가 아이들과 자이브를 추며 듣는 음악은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동시에 비극적인 상황과 정 반대의 음악이 만나며, ‘인물이 가질 수 있었던 (혹은 가졌던) 행복의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고, 이후 다시 비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감정적 고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쥐잡이꾼>은 린 램지의 영화 문법을 가장 날것의 모습으로 포착할 수 있는 장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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