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탐구노트 : 린 램지(Lynne Ramsay) 4

린 램지4. <케빈에 대하여> (2011)

by LIYU

오프닝 시퀀스는 스페인의 라 토마티나를 즐기고 있는 에바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토마토를 던지고, 터뜨리고, 으깨진 토마토를 몸에 부으며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으로. 에바 역시 사람들과 함께 붉은색의 향연에 동참한다. 그러나 서서히 이 장면에 깔리는 사운드가 변한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소리에서, “네 년이 내 애를 앗아갔어.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같으니.”, “살인마다!” 등 저주와 비난, 울부짖음이 난무한 소리로 변한다. 이러한 소리와 붉은 색감의 영상이 더해져, 에바는 더 이상 축제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 지옥의 한 가운데에 놓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토마토가 아니라, 마치 짙은 핏물 속을 뒹구는 모습처럼.


이후 러닝타임 내내 이런 방식의 동시적이지 않은 영상과 사운드가 결합 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장면으로는 클라이막스 시퀀스, 케빈의 체포 장면을 꼽고 싶다. 케빈의 학교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에바는 학교에 간다. 많은 사람들이 붉은 색감의 영상 속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고, 경찰들은 학교 문에 걸린 자물쇠를 절단한다. 자물쇠가 절단 되어 바닥에 떨어진 후, 케빈은 유유히 걸어 나온다. 자물쇠가 절단되기 이전까지의 사운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사이렌 소리 등 낮고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을 주는 소리였으나, 케빈이 나오는 장면에서 그 소리들은 환호, 박수갈채, 카메라 셔터음이 뒤섞여 마치 영웅을 (스타를) 마주하는 사람들을 연상하게 하는 소리로 변한다. 경찰의 무전 소리가 나기 전까지, 케빈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영웅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후, 케빈이 체육관에 들어서며 살인을 저지른 이후와 영상과 체포 장면의 유사한 소리들이 겹치며 마치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국가대표 양궁선수의 모습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간 영화를 봐오면서 이렇게 사운드를 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낸 장면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있었겠지만, 과장하자면 그렇다) <케빈에 대하여> 처럼 강렬하고, 명확한 이미지와 사운드가 내 안에 꽂힌 영화는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케빈에 대하여>를 가지고 대화를 하게 된다면, 린 램지의 ‘은유적인 화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끔찍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지나치게 혐오스럽거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장면을 앞세우지 않는다. 중간 중간 일어나는 끔찍한 순간들 (햄스터 시체가 배수구에 걸려있다거나, 독극물로 실리아가 눈을 잃게 된다거나 하는 일들) 역시 직접적인 영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햄스터 시체가 걸린 배수구는 물이 빠지지 않는 모습으로, 실리아가 눈을 잃게 된 장면은 케빈이 리치를 씹어 먹는 모습으로 대체된다. 대사, 연기, 영상, 사운드가 모두 결합되어 은유적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극적인 사건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그 사건을 분해하고 재조립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시처럼.


사실 은유적 화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앞서 언급한 오프닝 시퀀스를 다시 한 번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케빈에 대하여>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에바가 붉은 토마토 범벅이 된 채 사람들의 손에 들려 옮겨지고 있는 장면을 보고 나는 ‘예수’를 떠올렸다. 두 눈을 감고, 두 다리를 모으고, 양 팔을 넓게 벌린 에바, 그리고 예수.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걸려 죽었다는 예수의 모습과 케빈의 죄로 인해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물리적 폭력에도 “It’s My Fault.”라 말하는 에바의 모습은 닮아있었다. 이는 비단 에바에게만 한정 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프레이밍 된 ‘어머니’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그려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린 램지와 <케빈에 대하여> 원작자 모두, 이번 작품에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하고 싶어 했다는 인터뷰를 봤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어쩌면 철저히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라고 말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강요에 대한 반발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더 이상 나로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나로서 사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이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실체가 아닐까. 그래서 였을까, 나는 <케빈에 대하여>를 보며 모성애라는 신화를 전복시키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사람들’을 그 사람 그대로 보길 바라는 마음이 반영 된, 어떤 처절한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강렬하고 처절한 목소리. 비극적인 상황의 한 가운데를 달리면서도 전에 듣던 즐거운 노래를 듣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하는 에바의 모습은, 자신의 삶 전체로 모성애라는 단어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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