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램지5. 린 램지 영화 세계 속 '죽음' 살펴보기
<쥐잡이꾼>, <모번 켈러의 여행>, <케빈에 대하여>.
이 세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자면 ‘죽음’을 꼽을 수 있다. 좀 더 구체화 시키자면, 가까운 죽음으로부터 ‘영향 받는 인물들’. 세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죽음을 목도한다. <쥐잡이꾼>에는 친구의 익사에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 10대 소년이 등장하고, <모번 켈러의 여행>에서는 자살한 애인을 발견하고, 그의 유품을 습득하는 20대 여성이 등장한다. <케빈에 대하여>에는 자신의 아들이 살해한 남편과 딸, 학생들을 목도하는 40대 여성이 등장한다.
사실 ‘죽음’이라는 사건은 린 램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에 등장시키는 소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서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다른 영화들과 어떤 차별성을 갖는다. 아마 그 차별성은, 많은 영화에서 다뤄졌던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다른 누군가가 성장’ 한다거나, ‘죽음에 대해 속죄’ 한다거나, 혹은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견디는 각자의 방법’을 그리는 식의 뻔한 흐름이, 린 램지의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린 램지 영화 속 인물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보고, 그냥 살아간다.
견딘다거나 버틴다는 표현과는 다르다. 물론 인물들이 겪는 죽음이, 다음 행동을 위한 동기가 되기는 하지만 이 역시 해당 사건 (죽음)에 대한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그저 인과 관계에 의한 흐름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영화 속 죽음의 의미를 지워버리는 느낌을 보여주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사건 자체를 아주 무겁거나 심오한 의미를 담은 무언가로 여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케빈에 대하여>의 경우, 총기 난사 사건을 중심으로 에바가 케빈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는 순간을 위해 영화가 달려가지만, 결국 “나도 모르겠어”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이유없는, 이유모를 죽음과 삶. 린 램지는 <케빈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죽음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죽음이 다뤄지는 방식, 또 그 죽음과 연관 된 인물들의 태도에서 린 램지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실 린 램지의 단편작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인데, 개인적으로는 <Small Deaths>에서부터 그것이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느꼈다. 죽음과 고통에 대한 인식이 어린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느리고 단순해보이는 클로즈업으로 포착하면서 린 램지의 화법이 시작된다. 그러나 <Small Deaths>에서도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찾을 수 있지만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해당 단편은 <쥐잡이꾼>과 동일하게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첫번째 단편인지라, 빈민가 주변의 들판과 하층민 (노동자) 계급 가족들의 집, 사회 소외 계층 가정의 아이들이 등장하며 마치 <쥐잡이꾼>과 동일한 시간대의 다른 인물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특히 오염 된 개천이라는 공간은 <Small Deaths>와 <쥐잡이꾼>, <모번 켈러의 여행>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공간은 사회 소외 계층과 버려진 공간, 죽음과 고통, 고독과 외로움을 대변하고 있는 공간이다. 린 램지의 영화에서 ‘물’이 갖는 의미는 생성, 생존을 위한, 탄생 등 보편적인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정 반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개천의 물 뿐만 아니라, <케빈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토마토즙 역시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즐거운 축제, 쾌락의 순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지옥의 한 가운데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에바의 모습이 중첩되어 보이는 것은 비단 나만의 해석이 아닐 것이다. 린 램지에서 죽음이란, 삶과 공존하는 것, 함께 뒤엉켜 이어지는 것, 의미를 찾을 필요가 딱히 없는 것으로 묘사되는 듯 하다.
린 램지의 단편 <Swimmer>를 보면 이러한 태도가 좀 더 명확하게 보여진다.
한 청년이 수영을 하는 모습이 보여지고, 중간 중간 청년이 지나는 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소리가 섞여 들어오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아주 특별한 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는 이 영화에 집중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바로 사운드였다. 물 가르는 소리,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라디오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등. 어디서, 왜 들려오는지 모를 소리에 집중하며 수영하는 청년을 따라 가다보면, 삶을 바라보는 린 램지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게 되는 듯 하다.
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시선을 반영하는 린 램지의 영화들은, 내게 작가로서의 감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 준 첫 교과서 같은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