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새로운 미래를 그려가는 이야기
마유 스스로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몸이 아프다거나 학교에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 9쪽
"가고 싶지 않으니까 안 가는 거예요. 그런 회색 상자에 무작정 갇히는 건 싫어요. 다른 사람들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일단 저는 안 그래요." -124쪽
마유를 보니깐 예전에 만났던 한 학생이 떠올랐다. 우리 반 학생이었던 소윤(가명)은 장기결석 중이어서 가정 방문을 가게 됐다. 교실에 있을 때도 축 쳐져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이였다. 특별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반에서 괴롭히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거 시끌벅적하고 사방이 꽉 막힌 교실 속에 있기에는 한없이 여려 보이기만 했다. 그 학생을 보면서 내 모습이 겹쳐져 보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학교란 곳은 쉬운 곳이 아니었으니깐. 소위 인싸 무리에 속한 아이들에 비해 소위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아이들은 소수의 친구들만 사귀며 조용한 학교 생활을 하곤 한다. 학급이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으면 그런대로 지낼 만하지만, 거센 격랑이 일듯이 춘추전국시대처럼 이 파 저 파로 나뉘며 기싸움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타깃이 되는 아이들이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마유의 마음에 더 아리듯이 공감이 갔다.
마유는 학교가 싫다고 한다. 즐겁지 않다고 않다.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한다. 학교에 가지 못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 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특별한 친구도, 좋아하는 선생님도, 재미난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 마유 표현대로 회색 상자 같은 곳이 학교인 곳이다. 이런 학생들을 예전에는 쉽게 학교 부적응자로 낙인찍었지만, 요새는 학업중단학생이라는 순화된 표현을 쓴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에만 학업중단학생이 5만 명이 넘는 등 해마다 늘고 있다. 교사로서 학교의 정체성에 고민이 되며 학업중단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 마유는 이러한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궁금해하며 동화를 읽어나갔다.
"놀랐지? 나도 처음에는 엄청 놀랐어. 가게 안에 아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잖아. 이게 바로 일요일 상점의 스케치 룸이야. 스케치 룸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 같이 무엇을 그릴 지를 정해. 그러고 나서 문을 열면 그게 딱 나타나." - 54쪽
그건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이 무척 와닿았다. 학교 가기 싫은 교사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농담처럼 회자된 것처럼, 나 또한 교사로서 너무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구로 찾은 게 주말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색연필화도 그리고 유화도 그리고 점차 오일파스텔, 아크릴화까지 그림의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마유도 일요일에만 여는 상점에서 그림 메이트를 만나고 자신의 실력을 키워간다.
매번 상상하는 대로 변하는 스케치룸. 어떤 날은 풀이 흔들리고 하늘은 높고 물소리가 흘러 들어오는 징검돌이 놓인 곳으로 어떤 날은 차가운 비가 쏟아지고 난 뒤의 하늘 같은 곳으로 또 어떤 날은 봄에서 여름이 되려는 때의 가장 화사한 정원으로 변하는 신기한 스케치룸에서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과 대화를 하며 그려나간다. 그런데 왜 하필 그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학교가 국영수 과목 위주로 짜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학창 시절에는 교과서에 낙서만 해도 혼이 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몰래 그리곤 했지만... 스케치룸에 모인 사람들이 그림에 대한 꿈을 뒤늦게 펼치듯이 그림을 그려나간다는 건, 지지받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그림 그리는 사람들 특유의 섬세하고 예민한 성향은 정형화된 학교라는 틀에서는 상처 입기가 쉽다.
"조코 언니, 언제까지고 참기만 해야 하는 거예요? 도저히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하는 거예요?"
마유는 옷소매로 눈물을 쓱 훔쳤다.
"우리 엄마는 참기만 하세요. 아빠가 자꾸 늦게 오셔서 쓸쓸한데도 쓸쓸하다고 말하는 걸 참으시는 거예요. 사실은 그림을 정말 좋아하는데……. 저 때문에 그림을 보러 가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참고 계세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 싫어요. 싫으면 싫다고 화를 내라고요. 참지 말고." - 125쪽
그런데 마유만 상처 입은 것이 아니었다. 엄마도 마유를 키우느라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요일의 상점은 시간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곳. 그곳에서 조코 언니도 만나고 엄마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엄마의 아픔을 바라보게 된다. 엄마도 한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미술에 대한 꿈이 있었는데... 결혼과 동시에 그 꿈을 접어버린 엄마. 마유를 키우느라, 아빠를 내조하느라 늘 참기만 해온 엄마. 결혼이란 건 이런 건가라는 걱정이 들었다. 실제로 오랜만에 육아를 하는 친구를 만나면, 정말 얼마만에 갖는 휴식인지 모른다고 했다. 미혼 때처럼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쉽지 않다고.
그런데 남편마저 남이라는 생각이 들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취미생활은 놓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출근 보내고 브런치 카페 간다고 혐오의 대상이 됐던 엄마들. 정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교사는 사정이 좀 낫지만, 일반 회사원들은 출산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사회적인 문제는 도외시하면서 일방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게 옳은 일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경력 단절이 되지 않게,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도했을 때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여러 제도적 기반이나 사회적 인식 또한 마련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점에서 사회적으로 토론과 숙의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마유의 엄마처럼 내면으로 곪아 들어가는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닐까?
"누에고치는 유충도 성충도 아닌 그 사이의 무언가잖아. 누에고치 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야." - 78쪽
손이 마유보다 먼저 옮겨야 할 색을 알아차렸다. 즐겁다? 아니, 아니다. 재밌다? 이것도 아니다. 마치 몸속에 그림을 그리기 위한 새로운 기관이 생겨난 듯했다. 그 기관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마유의 온몸에 그림을 그리기 위한 피를 돌게 했다. - 100쪽
하지만 그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유와 마유의 엄마는 나름대로 돌파구를 마련해 나간다. 바로 그림! 마유는 우연히 들른 일요일의 상점에서 그림 친구들을 만나고 적성을 계발해 나가고, 엄마 또한 잊고 있었던, 결혼과 동시에 묻어 두었던 그림에 대한 꿈을 다시금 펼친다. 누에고치처럼 껍질 안에 꽁꽁 숨어있지만, 조금씩 실을 뽑아내고 뽑아내면서 고치를 뚫고 나오면서 나비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마유는 그림을 그리며 온몸에 피가 생생하게 움직이는 듯한 경험을 한다. 내가 삶에 지쳐 희망을 잃고 울고 있을 때, 글쓰기와 그림, 피아노를 붙잡았던 것과 오버랩되어서 더 와닿았다. 물에 빠졌을 때, 예술활동이 구명보트 같은 존재가 되어 줄 수도 있다.
처음엔 제목이 일요일만 사는 아이여서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우울에 허덕이며 주말만 기다리던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매주 기다리던 일요일의 상점에서 마유는 새로운 꿈을 펼쳐나갔다. 그 힘은 마유의 엄마까지 일으켜 세웠다. 이 동화는 여러 환상적인 요소가 많이 결합되어 있다. 처음에는 밋밋하게 시작하던 이야기가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여러 이야기적 장치와 마법 같은 설정들이 이야기에 매력에 빠지게 만든다. 정말 구조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탄탄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동화를 통해서 삶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 지친 사람들, 새로운 꿈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대입해 보면서 힘을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