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한마디
이번 글은 좋은 생각 8월호 특집에 채택되어 실린 글입니다.
하늘은 드높고 아이들과 나의 마음은 물 위를 걷듯 가벼웠다. 초록의 싱그러움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저마다 얼굴에 미소를 띠며 설레는 마음으로 채비를 했다.
근교 동물원에 가는 날이었다. 가방에는 과자가 두세 봉지씩 들었고, 어머니가 싸준 김밥과 소시지가 어서 우리를 꺼내 달라고 아우성쳤다. 아이들의 마음도 두근두근 콩닥콩닥.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가는 봄 소풍, 이렇게 신이 날 수가. "선생님, 누구랑 앉아요?" "언제 도착해요?" "화장실 가고 싶어요." 아이들이 재잘재잘 질문을 퍼부었다. 나는 육 년차 교사로 어설픔과 노련한 사이에서 최대한 상냥하게 응대했다.
우리 반 스물여덟 명은 둘씩 짝을 지어 이동했다. 먼저 호랑이를 구경했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호랑이를 바라봤다. 다음으로 원숭이와 코끼리도 보았다. 그렇게 차례차례 모든 동물을 만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느 소풍날과 다르지 않았다. 귀엽고 순수한 아이들이 좋았고, 사진을 찍어 준 다음 잔디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잊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평소 장난을 잘 치는 진욱이가 불쑥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이 제 꿈을 이뤄 주셨어요!" "응?" "저는 코끼리 보는 게 꿈이었거든요."
내가 이 여덟 살 꼬마의 꿈을 실현해 주다니, 하늘을 날듯 기뻤다. 내가 누군가의 꿈을 이뤄 줄수도 있구나. 교사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처음 실감했다.
나는 전해에 담임을 맡았던 육 학년 아이들과의 마찰로 휴직까지 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세상은 잿빛처럼 어두웠으며 내 마음도 부정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길고 긴 어둠 끝에 겨우 복직해서 만난 일 학년 아이들과의 첫 소풍. 나는 회생을 넘어 실존의 의미까지 찾아 주는 묘약을 마신 기분이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이 꿈을 이루도록 돕는 교사가 되자고. 반복되는 일상도 아이들의 꿈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새롭고 창조적인 나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해마다 삼월이면 아이들의 소중한 꿈과 버킷리스트를 꼭 확인한다. 내가 그들의 소망을 이루게 해 주는 요술 지팡이가 되길 바라며.
내 교직 인생에서 하나의 행운과도 같았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