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니 어느새 연이는 다시 고등학생 시절로 되돌아와 있었다. 연이는 시간을 되돌려보니 자신은 너무 말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동화 <모모> 속 모모처럼 되길 바랐지만, 사실, 말하는 걸 더 좋아했다. 수다쟁이 앤셜리에 더 가까웠다. 아직 13살밖에 안되던 시절엔 뭐가 문제인지도 몰랐지만, 16살의 고등학생의 몸이 된 지금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정연이는 연이의 사과에 오히려 화만 더 내었다.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 7시 정각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덜컥 방문도 열렸다.
“아고, 연이야. 어제 엄마가 일찍 자서 네가 들어오는 걸 못 봤네. 된장찌개 했다. 두둑이 먹고 가.”
“역시 엄마 최고. 응!”
연이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먹고 학교로 향했다. 머릿속에서는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시간 여행을 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되겠지? 분명 다들 정신이상자 취급을 할 거야. 의사 선생님에게는 말해도 될까나? 아니야. 아니야. 분명 진단명만 늘어날 거야. 휴. 말 못 할 비밀이 또 생겨버렸네. 어머낫!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연이 앞으로 학교에 사는 검은 고양이가 재빨리 도망쳤다. 연이는 왠지 이날따라 이상하게 검은 고양이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각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교문 쪽으로 걸어갔다.
“연이야~”
“어. 소영아.”
“같이 들어가자.”
소영이는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뭐야. 나도 같이 들어. 엄청 박진감 있는데!”
“테일러가 킴 카사디안과의 갈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후 쓴 곡이라고 해. 노래 멜로디와 가사가 참 멋있지?”
“나도 테일러 좋아해. 테일러 정말 멋있다~ 노래도!”
교실에 들어와서도 연이의 머릿속에는 I got smarter I got harder in the nick of time 가사와 후렴구인 Look what you made me do가 잔향처럼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연이는 자신도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친구들하고는 일체 연락도 안 하고 기억을 지우고 싶어 정신과도 다니게 되었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마저 지울 순 없었다. Look what you made me do노래처럼 내 경험을 재료로 무언가 할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하며 연습장에 메모만 계속 끄적거렸다. ‘억울함’, ‘분노’, ‘배신’, ‘상처’, ‘외로움’ 등의 단어를 휘갈겨 썼다. 그런데 누군가 연습장을 확 낚아챘다. 국어 선생님 정미오였다.
“연이야. 무슨 힘든 일이 있는가 보다. 시 창작 수업 시간에 이런 메모를 끄적이다니. 시의 아주 좋은 재료가 될 거 같은데?”
“네?”
“시인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야. 연이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여. 이 감정을 시로 옮겨 적어봐.”
“하지만 전 시를 써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여기, 시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 손 들어볼래?”
“자 아무도 없잖아. 처음부터 시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 연이는 충분히 그러한 자질이 있는 것 같아. 평소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책들도 그렇고. 시집, 에세이, 소설 등 문학책을 많이 보잖아. 한번 자신감을 갖고 써봐.”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연이는 정미오 선생님의 말씀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시를 한 번 써볼까? 그때 창밖으로 검은 고양이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친구들은 고양이의 이름을 리본이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리본? 참, 앙증맞고 귀엽네. 검은 목에 리본을 달아주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연이는 하품을 하였다. 그런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고양이!’
‘시간 여행 버스도 고양이 모양이었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순간 잊고 있었어. 그러고 보니 밉긴 하지만 정연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긴 하다. 사실은 잘 못살았으면 좋겠어.’
연이는 손가락으로 샤프를 굴리면서 SNS를 뒤져볼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연이는 태생이 다른 사람에게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상처의 후유증은 계속 떠올라서 고통받고는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