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하필 그날따라 비까지 주룩주룩 쏟아졌다. 한쪽이 찢어진 검은색 우산을 쓰고 소녀는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그리고 한곳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달팽이가 한 마리 있었다. 소녀는 달팽이에게 말을 걸었다.
“달팽이야, 나는 길을 잃었어. 너는 집이 있어서 좋겠구나.”
“물론 집이 있어서 좋지만, 우리 집은 너무 약해. 게다가 난 혼자고. 같이 살면 좋겠지만.”
“그럼 나와 같이 가지 않을래? 나 너무 외로워.”
“좋아.”
그렇게 소녀와 달팽이는 함께 하게 됐다. 찢어진 구멍으로 비가 들이쳤지만 함께여서 행복했다.
길을 가다가 길가에 나팔꽃을 보았다.
“나팔꽃아, 너는 참 예쁘게 피었구나.”
“네 얼굴도 예쁘게 펴보렴. 왜 이렇게 울상이니?”
“나는 마음에 구멍이 났어. 길도 잃었고 가족도 없어. 물론 방금 달팽이 가족이 생겼지만 말이야.”
“그럼 나도 데려가렴. 나도 한 곳에만 머물러 있으니 답답하니깐 말이야.”
그리하여 소녀는 나팔꽃을 꺾어 왼쪽 팔에는 달팽이를 오른쪽 팔에는 나팔꽃을 안았어요.
함께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어요.
“소녀야, 길 좀 알려주지 않을래?”
“저도 길을 잃었어요.”
“내가 지도가 있어. 이것 좀 읽어주렴.”
“그렇다면….”
“쉿. 안돼. 위험한 사람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소녀를 낚아챘어요.
“아, 왜 이러세요?”
“그냥 순순히 따라와.”
“도와주세요.”
달팽이와 나팔꽃은 소녀의 팔에서 발만 동동 굴렀어요.
그때 멀리서 앳된 소년이 보였어요.
그 소년은 이리로 뛰어왔어요.
“무슨 일이죠?”
“으흠. 아니. 저 그냥.”
“왜 소녀를 안고 있죠?”
“에이. 넌 운 좋은 줄 알아라.”
누군가는 침을 탁 뱉고 가버렸어요.
“무슨 일이야. 너는 혼자니?”
“아니, 보시다시피 달팽이와 나팔꽃이 함께 있어. 너는?”
“나도 친구들이 많았지만 어쩌다 보니 혼자가 됐어.”
“나를 구해줘서 고마워. 그럼, 우리와 함께 친구가 되지 않을래?”
“좋아.”
그렇게 소년과 소녀, 달팽이와 나팔꽃은 친구가 되었어요. 이내 다시 소나기가 쏟아졌어요. 하지만 소년과 소녀는 소년이 들고 있던 노란색 장우산을 펼쳐 함께 우산을 쓰고 비를 막았죠.
“내 우산을 함께 쓰자. 모두들 비를 피할 수 있을 거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 고마워.”
달팽이와 나팔꽃도 환하게 웃었어요.
소년과 소녀, 달팽이와 나팔꽃은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는데 어느새 어둑어둑해졌어요. 비도 그쳤고요. 넷은 나무 아래로 피해 쉬었죠. 오들오들 추웠지만 서로 껴안으니, 추위도 잊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깜박 잠이 들었어요. 달팽이도 집으로 들어가고 나팔꽃도 꽃잎을 오므렸어요.
“오늘밤은 안심하고 잘 수 있을 것 같아.”
“잘자. 굿나잇.”
새벽이 되어 나팔꽃이 다시금 꽃잎을 활짝 펼치며 아침을 알렸어요. 소년과 소녀는 작고 은은한 나팔꽃이 깨우는 소리에 잠이 깼어요. 달팽이도 기지개를 폈어요.
그런데 밤에는 캄캄해서 보이지 않았는데 저 멀리 오두막이 보이는 거예요. 소년과 소녀는 달팽이와 나팔꽃을 안고 오두막으로 뛰어갔어요. 그곳에는 예쁜 식기와 멋진 가구들이 놓여있었어요. 그렇게 그 오두막은 소년과 소녀의 새 보금자리가 되었답니다. 달팽이와 나팔꽃도 함께요. 넷은 오래오래 아주 많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