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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반창고

성격 좀 고쳐라는 말

내향적인 사람의 자기 고백

by 루비
가장 마음 아팠던 타인의 비난은 무엇인가요?
나를 아프게 하는 타인을 향해,
이제 어떻게 대처하고 싶은가요? /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25쪽


난 혼자 놀기의 달인이다. 어려서부터 그랬었다. 동네 친구들과 집안에 함께 모여 오락게임이나 부루마블 같은 보드게임을 함께 즐기거나 그도 아니면 바깥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축구를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보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사주신 경찰서를 만들 수 있는 레고 블록 세트로 내가 짓고 싶은 집을 짓고 레고 인형으로 인형놀이를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미미인형과 2층 집 세트로 인형놀이를 하며 실과시간에 배운 바느질로 인형들에게 내가 디자인한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혀 주었다. 학교에서 시조를 배우고 난 후에는 혼자서 시조를 여러 편 지으면서 나만의 감수성 놀이를 했다. 기본적으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미미 인형을 잔뜩 갖고 놀던 어린 시절

5학년 특활시간에 나는 영어반을 택했다. 그때 왜 영어를 택했는지 나는 내가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어느 날 담당 선생님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외운 문장을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눈감고 계신 선생님 앞에 나가서 한참을 읊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몇 분 후에 선생님께서는 왜 아직도 안 나오느냐며 어서 나오라고 다그쳤다. 소심했던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안 들렸나 보다. 나는 거의 울먹거리며 다시 나가 재차 영어문장을 읊조렸다.

이렇게 소심했던 나이지만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자연 속에서 뛰놀면서 3년 내내 학급 임원을 했었다. 학교 성적도 좋아서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있었다. 엄한 선생님들 앞에서는 움츠려 들었지만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수다쟁이였다. 다만 나는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책에 깊이 빠져 있었다.


점차 그러한 다름에 대한 인식으로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내 단짝 친구는 전교 1등을 늘 독차지하는 아이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박 씨 부인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무심코 내 단짝 친구에게 이 책을 읽어보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정말?”이라고 연거푸 물었다. 그 친구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좀 낯설게 대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전학 갔고 우리는 고3 수능이 끝나고 재회했다. 재수를 하게 된 그 친구와 교대에 합격한 나는 그 만남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사람은 자신보다 낮게 생각했던 사람, 얕보던 사람이 뭔가 뛰어난 면모를 보이면 불편한 감정이 생기고 개중에 악한 인간은 마구 공격하고 비난한다고 한다. 그래서 쉽게 만만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나 보다.


그런 비슷한 일은 그 이후에도 반복됐다. 눈에 띄게 활달한 성격도, 특별히 내세울 거 없는 나이지만 나만의 세계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은 타인에게 쉽게 질시 또는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한 질시와 비난은 근거 없는 험담으로 둔갑해 잘 모르는 타인들은 쉽게 그들의 비난에 편승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혼자서도 잘 사는 나, 나만의 세계관이 확고한 나라는 정체성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로 인해 쉽게 공격받곤 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말이 “성격 좀 고쳐.”였다. 내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쌓아 올린 껍질 속으로 점점 움츠러들 뿐이었다.


최근에 내향성을 다룬 책을 여러 번 읽었다. 그 책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의 사례가 무수히 많이 있었다. 시끌시끌한 파티보다 혼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 독립적이고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 일탈이나 가벼운 만남은 멀리하고 진지한 관계에 열중하는 사람, 가벼운 잡담보다 의미 있는 대화를 더 중시하는 사람,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으로 싸가지없다, 무례하다, 냉담하다는 오해를 잘 사는 사람 등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콰이어트>를 쓴 수전 케인 또한 테드 강연해서 말했다.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은 꼭 시끌 버쩍한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뀌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낀다고. 나도 살면서 내내 느낀 압박과 불안함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나에 대해 관찰하고 탐구하고 내향성에 대해 공부한 결과 이제는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려고 한다. 외향인이 살기 편한 세상이지만 분명 인구의 1/3인 내향인에게도 그만의 존재의 이유가 있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깐 말이다. 나는 나에게 “너 성격 좀 고쳐.”라고 말하며 무례한 말을 하는 사람들보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줄 아는 예의 바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조용히 말할 수 있는 용기로 멋진 내면 여행을 떠나세요.” 수전 케인이 테드 강연에서 마지막으로 맺은 말이다. 나도 계속해서 나만의 내면 여행을 하기를 꿈꾼다.




수전 케인의 테드강연↓↓↓

https://youtu.be/xUATsuzWj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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