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와 셀프의 거리 좁히기
사회적 자아(에고)와 내면의 자기(셀프)의 모습은 어떻게 다른가요?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정여울 저, 49쪽
내 에고는 학교 선생님이다. 학생들을 통솔력 있게 이끌고 활달하고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 하지만 내 셀프는 내면의 여행을 갈구하는 구도자에 더 가깝다. 조용히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고 많은 외부 자극을 받으면 쉽게 지치고 혼자만의 시간이 편안한.
세상은 성공, 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욕망하라고 부추긴다. 이런 세상에서 내면의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들, 좀 더 철학적인 사색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배척받고 소외당하기가 쉽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로 치는 돈과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벗어난 존재, 허무맹랑한 이상주의자쯤으로 치부받기가 쉽다.
그렇다면 나는 에고와 셀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고민이 많이 된다.
우선 나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욕망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물질적인 부, 야망을 추구하는 게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인정하되 내 셀프의 장점을 살려 조화를 이루는 법을 안내하고 싶다. 꼭 외적인 것만을 추구하지 않아도 내면적인 것을 충만하게 채우면서도 우리가 욕망하는 외적인 것들을 채울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다. 세상에는 한 가지만의 길이 있는 게 아니라 내향적이고 섬세한 사람들만의 강점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인물인 간디, 링컨,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그 예일 것이다. 나만의 페이스대로 걸어가면서도 얼마든지 내면의 창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직접 보여주고 싶다. 나는 그리하여 내가 지금 추구하는 것들, 내면의 탐구, 정신세계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문학, 음악, 철학 등을 계속 공부하고 싶다.
둘째, 선생님으로서 나와 비슷한 학생들의 강점을 살려주고 싶다. 사회는 분명 외향인 위주로 굴러가고 있고 학교도 마찬가지다. 인싸라고 해서 활달하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주목받는 세상이다. 학급에서도 내성적이고 힘이 약한 학생들은 쉽게 아이들 사회에서 무시받곤 한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그런 분위기를 막아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고 싶다. 각자의 개성이 존중받는 학급, 활달한 학생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학생도 모두 존중받고 서로 화합하는 반, 그런 반을 만들고 싶다. 그렇다면 인싸, 아싸라는 말로 사람을 구별 짓지도, 사회에 왕따와 폭력이 난무하지도 않을 것이다.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존중해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읽고 쓰기를 계속하고 싶다. 내가 20대 초반부터 계속 쭉 해온 게 읽고 쓰기였다. 그 시절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알겠다. 내가 얼마나 읽고 쓰는 것에 목말라하는지, 읽고 쓰기가 얼마나 내 본성에 잘 맞는지를.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읽고 쓰기를 꾸준히 해서, 궁극적으로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처럼 위대한 작가가 되지는 못할 지라도,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글은 남겨보고 싶다. 아직 구독자 168명뿐인 미약한 브런치 작가이지만, 점차적으로 구독자도 늘려가고 꼭 내 이름으로 된 책도 출판하고 싶다. 그리하여 내향적인 사람도, 늘 내면의 무언가를 탐구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콰이어트>를 쓴 수전 케인이 7년간의 집필 시간을 가진 것처럼 나도 서두르지 않고 길게 호흡하며 꾸준하게 정진해야겠다.
이렇게 꾸준히 실천하면 어느 순간 분리되었던 나의 에고와 셀프가 합치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온다면, 나는 내 인생 궁극의 행복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