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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반창고

트라우마 극복

상처와 직면하기

by 루비
3. 극복하고 싶은 트라우마가 있나요? 있다면 그 트라우마와 대면하기 위해 어떤 용기가 필요한지, 글로 써볼까요?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정여울 저, 67쪽

난, 대학 시절 심한 왕따를 당한 상처가 있다. 그것은 내게 진한 트라우마로 남아서 내 인생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어머니는 내게 “이제 그만 과거에서 벗어날 때도 됐잖니. 다 잊고 현재와 앞으로에 집중해.”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안다. 알면서도 그 트라우마가 극복이 잘 안된다. 정여울 작가님은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란 책에서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그 트라우마, 상처받은 그 시절의 내면아이를 대면하고 감싸주라고 한다. 아픈 그림자를 맞잡고 함께 춤추며 직면하여 진정으로 상처받은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나또한 그래야겠다. 나 자신, 섬세하고 여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나의 내면을 감싸 안아주어야겠다.


내가 남자동기랑 대학교 소공원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날 따돌리던 여자 동기가 다가와서 “불쌍하니깐 네가 놀아줘라.”하며 무시하듯 경멸조로 내뱉고 스쳐지나간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여자 동기는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나에게 다른 동기들이 맘에 안 든다며 나와 친해지고 싶었다고 고백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둘만이 진득하게 가까워지는 걸 원치 않았고 그런 고백에 응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 친구는 태도를 바꾸어 나를 경멸하고 무시하고 심하게 따돌리기 시작했다. 나만 보면 으르렁거리고 다른 동기들까지 끌어들여 나를 비난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여자 동기가 좋아했던 남자선배가 나한테 친절하고 관심이 많았던 것도 한 몫 했던 듯 하다. 나는 대학시절 내내 그 동기의 무서운 노려봄과 따돌림에 공포를 느끼며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대학시절을 보내고 졸업을 한 후 나는 임용시험 재수 공부를 했다. 대구에 있는 동기들과 떨어져 노량진에서 새로운 스터디원을 구해 보낸 그 시간은 대학시절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행복했었다. 내가 살던 고시원 창문으로 보이는 63빌딩과 한강, 매일같이 산책갔던 사육신공원 등은 나에게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기나긴 수험생활이 끝나고 나는 신규교사 임용 연수원에서 다시 한 번 그 여자동기를 마주치고 말았다. 그 순간 직감했다. 내가 얼마나 공포에 전율하고 있는지... 나는 그 여자동기가 너무나 무서웠다. 그 여자동기와 눈빛이 마주치자 그 여자동기는 나를 향해 “어~”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고양이 앞에 쥐 마냥 움츠러들고 재빨리 피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간이었던 그 연수기간 내내 그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이후로는 다행히 만난 적이 없지만 간간히 소식을 듣긴 했다. 우연히 그 여자동기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놀랍다.”라는 말이 내가 뱉은 첫마디였다. 날 그렇게 괴롭히던 동기가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결혼에 골인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거의 집단따돌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과 동기들한테 엄청난 괴롭힘을 당했었다. 시작은 시기, 질투에서 비롯되었지만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에 대한 근거 없는 험담과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며 과격한 폭언과 왕따 주도로 이어졌다. 나는 결국 대학 4학년 내내 혼자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내가 마지막 교생실습을 우연히 같은 과 동기랑 같은 학교로 신청했지만 이주일 내내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아 같은 과 다른 반 오빠가 “너 은따냐?”라고 할 정도였다. 은밀하고 지속적인 괴롭힘은 그렇게 내가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이후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과 동기로 추정되는 인물로부터 나는 1년간 스토킹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고도 정신적으로 말짱하다면 그야말로 초인일 것이다. 나는 결국 무너졌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지금도 동기들 생각만 하면 굉장히 무섭고 소름이 끼친다. 아마 내가 극복해야 할 가장 강력한 내 인생의 트라우마일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물론 그 동기들 중 일부는 “내가 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니깐 말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시작된 괴롭힘이 4학년 말에는 10여명으로 확대됐고 졸업 후 몇 년 뒤 내가 도움을 청했을 때 방관자였던 그들은 모두 외면했고 심지어 한 여자동기는 내게 “동기들이 다 너 싫어한다.”라고 쪽지를 보내오며 공포심을 부채질했다. 이제 내게 그들이 다 한통속으로 보이는 이유다.


다행히 지금은 날 괴롭히던 인간들, 무시하던 인간들을 다 끊어내서 괴롭힘은 당하지 않는 처지이다. 하지만 여전히 트라우마로 인해 위축되어있고 소심한 성격은 그대로이다. 사람들이 나를 두고 수군거릴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이다. 난 휴직 후 낯선 사람들과 갔던 제주도 여행에서 생각보다 잘 지내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 나를 괴롭히고 따돌렸던 동기들처럼 나한테 윽박지르거나 강요하거나 화내는 사람 없이 조용조용하고 섬세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었다. 나를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괴롭힘으로 울고 있는 나약한 소녀가 아니라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여전히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나 자신을 사랑하며 그렇게 다독이며 나아가야겠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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