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용서를 실천하기
4. 자신의 내면아이가 진정으로 성장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내면아이의 성장을 위해 어떤 실천을 하고 싶은가요?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정여울 저, 93쪽
나는 대학시절 아픈 따돌림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따돌림을 대학 동문으로 이루어진 직장에서 재차 경험해야만 했다. 그 아픔은 나에게 엄청난 시련이었고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이었다. 난 도무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내 주위 거의 대부분이 나에게 윽박지르고 무례한 말을 서슴지 않고 따돌리고 멀리했다. 나에 대한 계속되는 험담으로 주변 사람들은 날 노려보고 수군거렸다. 나는 정말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고 휴직 후에는 어두운 방안에서 숨죽이며 매일 자살방법을 검색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좋은 의사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을 만났고 지금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행복으로 가득한 매일매일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위와 같은 상처로 나의 내면아이는 지금도 상처받기 쉽고 작고 움츠려 들어있다. 이러한 내 내면아이가 진정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여울 작가님이 통과의례라고 말한 고통은 이미 충분히 경험한 거 같다. 하지만 한 번 더 그 고통을 감내해야겠다. 그것은 진정으로 그들을 용서하는 것일 게다.
달라이라마의 용서란 책도 사놨지만 아직 읽진 못했다. 용서와 관련된 영화 <밀양>을 보고 전도연의 분노에 가슴깊이 공감했었다. 그만큼 용서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용서해야겠지? 그들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우리 엄마는 이제 지난 일을 잊고 앞으로의 좋은 일만 생각하라고 하신다. 나도 그러려고 노력은 한다. 하지만 나는 대학 동기들과 직장에서 평생 죽을 때까지 봐야 하는데 어떻게 그 아픔이 쉽게 잊힐까. 지금도 같은 지역에 근무하는 동기, 선후배만 10여명이 넘는다. 나는 피해자임에도 행여 같은 학교나 연수원에서 마주칠까봐 그들을 피해다닌다. 실제로 연수원에서 동기 남자를 만난 적도 있다. 그 남자동기와 연수를 같이 듣는 내내 대학 때의 따돌림, 직장에서의 따돌림이 계속 머릿속에서 영사기처럼 재생되어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지금도 완전히 상처가 지워지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내 연락을 무작정 차단한 사람들, 도움을 요청했는데 외면한 사람들, 2차, 3차 가해를 한 사람들이 너무 밉다. 하지만 그럼에도 용서해야겠지? 나를 위해서.
이유란 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진짜 이유란 건 그들도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니깐. 내가 추측하는 이유를 말해보았지만 비웃음과 조롱만 샀다. 왜냐면 나는 혼자고 그들은 다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들은 입을 맞춰 나를 소설쓰는 애, 피해망상 환자로 몰아붙일 수 있으니깐. 그게 피해자가 더 억울한 이유이다.
난 그들을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 연락할 생각도 없다. 다만 용서하고 마음속에서 지우는 일만 노력할 뿐이다. 단지 눈에 띄지 않는 학생, 목소리가 작고 소심한 학생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지 않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귀 기울여주고 함께 손을 맞잡고 방관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모두가 파괴적으로 힘들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단 한 명도, 내가 결혼식에 가서 축하를 해주고, 집들이까지 찾아가고, 공연에 가서 축하를 해주고, 편지와 선물로 즐겁게 해주고, 소개팅을 주선해주고, 격려와 아량을 베풀었던 그 누구도 내 도움을 들어주지 않고 묵살했다. 나는 그렇게 사정없이 짓밟혔다.
마음속으로 용서하는 것과 진실을 외치는 것은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살아남아 자신이 체험한 고통을 글로 엮어냈듯이 나또한 내가 겪은 일들을 소설로 펴낼 계획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 한국사회가, 한국의 학생들이, 사람들이 얼마나 경쟁과 모함과 비난과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지, 얼마나 인간성이 말살되었는지 여실히 반영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침을 가하려고 한다. 부디 나의 아픔과 고통과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